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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식의 허튼소리- 어느 날 사라진 엄마, 그리고 동냥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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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식의 허튼소리- 어느 날 사라진 엄마, 그리고 동냥생활
  • 경상도 촌놈 조유식
  • 승인 2013.09.10 07: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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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학력 '무학'으로 기자가 되기까지

요즘 필자를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고 한다.

어떤 분들은 필자를 보고 ‘저런 무식한 놈이 어떻게 기자와 언론인이 되었는지 모르겠다’며
까스명수를 들이키기도 한다고 한다. 이분들의 배앓이를 고쳐주고 또 궁금해 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필자가 왜 무엇 때문에 이 험한 언론인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다 시 한번 밝히고자 한다.

필자가 태어난 곳은 경남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로 삼성그룹 창업자 고 이병철 회장께서 태어난 곳이기도 한다. 필자가 살던 집과 이병철 회장 생가 그리고 별장은 불과 20여 미터 이웃에 있었다.

엄마가 중교리 5일장 장터 입구 큰집에서 장사를 하고 있던 어느 날 건장한 청년들이 와서 가재도구를 들어내고 엄마와 우리 형제들을 집 밖으로 쫓아냈다. 흘러내리는 콧물이 얼 정도의 너무나 추운 겨울날 거리에서 오돌 오돌 떨고 있는 필자의 가족은 이웃사람들의 도움으로 마을에 비어 있는 집으로 우선 거처를 마련했다.

당장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는 피난민 신세가 된 필자의 가족들은 이웃들의 도움으로 겨우 끼니를 때우는 형편이었다. 엄마는 쫓겨난 충격으로 한동안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지내기도 했다.

다행히 누나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바람에 학교에서 나눠 주는 우유 덩어리와 미국제 빵들을 자주 가져와 겨우겨우 배고픔을 이겨내기도 했다.

우리 형편을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누나는 자식이 없던 누나의 담임선생님의 양녀가 되어 선생님 집으로 갔고, 절대 찾아가서도 안 되고 만나서도 안 된다는 엄마의 신신당부와 이웃아줌마들의 윽박으로 누나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얼마 후 엄마마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필자만 혼자 남았다.

졸지에 고아가 된 필자는 살고 있던 임시거처 집 마당으로 연결된 골목길을 며칠 동안 눈이 빠지도록 쳐다보았지만 애타게 기다리던 엄마는 결국 돌아오지 안 했다.

어느 날 누나를 데려갔던 그 아주머니가 와서 필자를 데리고 이병철 회장의 재실(지금의 생가 자리) 내 제일 구석진 방 한 칸을 가리키며 이곳에서 살면 나중에 엄마가 데리러 올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 동안 밥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안 했고 필자는 밥을 굶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에는 재실의 냉방을 피해 벼 베기를 마친 논 한가운데 세워놓은 짚단 속을 비집고 들어가 서서 잠을 자기도 했는데 엄청 따뜻했다.

배고픔을 이겨 내기 위해 물만 먹고 견디기도 하다가 어린 나이에 밥을 얻어먹기로 하고 바가지를 들고 집집마다 동냥을 하러 다녀 보았다. 동냥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찾아간 집집마다 밥이 없다, 밥이 아직 안 됐다, 아침부터 재수 없다며 소금을 뿌리기도 했다.

같은 또래에 비해 똑똑하고 성숙하다는 어른들의 칭찬을 받아오던 아이였지만 동냥 첫날 열 몇 집을 다녀 딱 한집에서 보리밥 한 숟가락을 얻는데 만족해야 했다.

생각 끝에 다음날 아침 일찍 마을 뒷동산에 올라 굴뚝에 연기 나는 집만 지켜보다가 연기가 멈춘 집으로 달려가 아침 밥상을 받아든 어른들이 먼저 한 수저를 들고 난 후 동냥을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필자는 매일 제법 잘사는 집을 단골로 정하고 돌아가면서 동냥을 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은 굶기도 하고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먹을 수 있는 아카시아 순, 소나무 순, 돼지감자, 수확 후 버려진 밭의 무, 배추뿌리 등등을 먹으며 몇 개월을 버티기도 했다.
하루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자기 집 마루에 펴놓고 팔던 과자류 중 사슴처럼 생긴 제법 큰 과자 한 개를 몰래 훔쳐 먹었다가 들켜 아줌마 손에 끌려 지서(파출소)까지 갔다.

지서에서 아줌마가 보는 앞에서 순경 아저씨가 큰소리로 나를 야단치면서 내 왼쪽 뺨을 내려쳤다. 너무나 무섭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여 한참 동안 엄마를 부르며 펑펑 울기만 했다.

뺨 때리는 모습을 본 아줌마가 돌아가자 순경 아저씨가 나를 보고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남의 것을 훔쳐 먹으면 안 된다.’며 장날만 파는 돼지국밥 한 그릇을 사주셨는데 그때 그 돼지 국밥 맛은 꿀맛 그 이상이었다.

며칠을 굶고 나서 먹는 밥에다 돼지고기까지 들어 있었으니 그 맛을 말로서 글로서 어찌 표현할 수가 있단 말인가!

지금도 나는 돼지 국밥을 제일 좋아하고 즐겨 먹으며 그때 그 아줌마에게 미안함과 따뜻한 순경 아저씨의 감사함을 잊지 않고 있다.

(다음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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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實 2013-09-26 19:02:19
가설극장 선전반은 마을 돌며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 눈물의 신금단'을 가지고 오늘 여러분을 모시고자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손자 손녀 손 잡고 소리나는 이곳으로 와주세요. 손수건 한장씩은 꼭 가지고 오시기 바랍니다'
조유식 님의 어릴적 이바구가 신금단 이바구 저리가라 인줄로 짐작됩니다. 우리 그 시절 얼쭈 그렇게 살았지요. 더 튼튼해지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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