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사의 정립을 위해 인제대학교(총장 이원로) 가야문화연구소(소장 이영식, 역사고고학과 교수)가 주관하는 가야사학술회의가 4월 26일 국립김해박물관 강당에서 막이 오른다.
이번 가야사학술회의에는 가야사 및 가야고고학 전공 학자 9명이 참석해 “가야의 김해 봉황동유적”이라는 주제를 놓고 논문발표와 종합토론을 벌인다.
제18회 가야사국제학술회의(2012) 발표자 및 토론자, 관계자 단체사진. | ||
이날 ‘김해 봉황동유적 발굴조사 신례’에서는 2013년 4월 봉황동유적 주변 발굴조사에서 확인한 봉황토성으로 추정되는 석열에 대한 조사성과를 발표한다. 정밀 GPS를 이용하여 유구가 위치한 해발고도를 측정한 결과, 기존 봉황토성 발굴조사 보고서에서의 해발고도와 실제 해발고도가 약 1.5m 내외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발표 : 심종훈,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낙동강 하류 철기시대 동물유체 연구’에서는 봉황동유적을 포함한, 철기시대 고김해만 주면 패총유적에서 출토한 동물유체를 취합ㆍ분석하여 철기시대 당시의 생업환경을 추정하고 있다. (발표 : 정찬우, 인제대학교박물관 / 토론 : 유병일, 한국문화재연구원)
이어, ‘김해 봉황동유적의 발굴성과’에서는 일제강점기인 1907년 일본학자 今西龍(이마니시 류)가 처음 봉황동유적(회현리패총)을 발견한 이래, 현재까지 진행된 조사성과를 정리하고 있다.(발표 : 윤태영, 국립김해박물관 / 토론 : 정인성, 영남대학교)
‘고고자료로 본 봉황동유적의 성격’에서는 삼한시대 후기 입후부터 금관가야 존속시기인 3~6세기 대에 존재하였던 봉황동유적을 살핀다.
(발표 : 전옥연, 상주박물관 / 토론 : 심재용, 대성동고분박물관)
마지막 발표인 ‘봉황동유적과 대외교류’에서는 봉황동유적이 늦어도 3세기 중엽부터 국제적인 무역항이었던 것으로 보고, 5세기 무렵까지 이곳을 매개로 한 한반도와 일본열도 중심의 교섭과 교류 양상을 검토한다.
(발표 : 이근우, 부경대학교 / 토론 : 연민수, 동북아역사재단)
논문발표 이후에는 봉황동유적에 대한 밀도 있는 종합토론이 이어질 예정이다.
관심 있는 일반시민ㆍ학생 등 누구나 참석 가능하며, 종합토론에서는 평소 가야사에 관해 궁금했던 것을 전문학자들에게 직접 질의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