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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황금 전설의 땅 `미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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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황금 전설의 땅 `미얀마`
  • 박순호 기자
  • 승인 2014.08.30 1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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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anmar, In Love with Buddhism

 

 

 

미얀마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2500여 년을 이어온 불연(佛緣)의 나라이자 발전을 향해 달음질치듯 살아가는 현대인을 조롱하듯 깨친 자의 평온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향, 그리고 즐비한 황금 탑의 눈부심에 부처의 생애가 전설처럼 들리는 곳.

아직 많은 사람이 가보지 못한 그곳 미얀마에서 깨달음을 찾는 수행자의 발걸음을 따라가 보았다.

   
 
  쉐다곤 대탑.  
 
610년 현장스님이 쓴 `대당서역기`에 미얀마에 관한 글이 적혀 있다.

"이곳에서 동북쪽 대해를 지나면 해안 골짜기에 스리케트리아(미얀마의 프롬 지방)가 있다. 산천이 길을 막아 경역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 풍속과 경계는 사람들의 말로 알 수 있었다." 현장 스님이 인도 벵갈만의 한 바닷가에서 미지의 나라 미얀마를 바라보며 남긴 글이다.

아마도 한 생을 다 바쳐야 했던 천축순례였기에 그곳에서 아쉬운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 일찍이 부처님 전생담에도 인도 상인이 재물을 얻기 위해 바라나시를 출발해 황금의 나라 수바르나부미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수바르나부미가 바로 오늘 날의 미얀마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렇게 수천 년을 미지의 세계로만 남아 있던 황금의 나라 미얀마가 최근 굳은 쇄국의 문을 열고 우리에게 손짓한다.  

 
 
■ 누구나 승려이고 누구나 불교를 믿는 나라

약 89%의 인구가 불교도(나머지는 이슬람과 기독교 신자)인 미얀마에서 불교는 종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대개 상좌부 불교(흔히 소승불교라고 한다)인데, 특이한 점이 있다면 낫(Nat)이라는 정령신앙과 함께 상호 보완적인 신앙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것. 미얀마의 정령 신앙인 낫은 우리나라의 성황당에 모신 신이나 산신령과 비슷한 개념이다. 미얀마인들의 불교적 일상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고 표현할 정도로 평생을 사원과 불교 수행의 일상 속에서 살아간다.

미얀마인은 태어나서 7일이 지나면 이름을 짓고, 다섯 살 무렵에 유치원 격인 사찰의 예비학교에서 예절과 불교 생활 규범을 배우기 시작한다. 아홉 살에서 열 살 사이에는 `씬퓨` 라는 의식을 치러 비로소 불교도로서 완전한 인격체로 인정받는다.

씬퓨 의식은 부처가 태자 시절 유성 출가한 모습을 모방해 얼굴에는 화려한 화장을 하고 몸에는 온갖 치장을 한 다음 백마를 타고 사원으로 가는 것.

이렇게 사원에 들어가면 삭발을 하고 승려에게 바리대를 받음으로 한 사람의 출가자가 된다. 이 순간부터 부모와 떨어져 한 철을 지내는데, 이때 불교의 기본예절과 기초적인 규범을 몸에 익힌다.

사찰에 들어온 아이들은 아직 어린 나이에도 열악한 사원의 공동생활을 잘 참으며 지내는데, 부모들은 먼발치에서 자식의 첫 출가를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본다. 또 성인이 되면 정식 비구로 출가를 하는데, 특이한 점은 출가와 환속이 자유롭고 아무도 환속을 흠잡지 않는다.

 
 
오히려 중매결혼 때나 취업할 때 출가수행 경력을 요구할 정도다. 누구나 잠시 승려 생활을 하고 언제든지 집으로 돌아가 사회인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출가가 불법을 이해해 하나의 올바르고 도덕적인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인간 교육의 수련으로 생각하는 측면이 있다.

참고로 미얀마어로 승려를 `폰지` 라고 부른다. `덕을 갖춘 자` 라는 뜻. 우리가 미얀마의 길거리에서 쉽게 만나는 자유분방한 행동의 승려 대부분은 수련승으로 단기 출가자가 대부분이다.

정식으로 비구계를 받은 영속 승려는 마음가짐부터 의식주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227계의 비구 비나야를 지켜야 한다. 이렇게 계를 지키며 20안거 이상을 환속하지 않고 지내면 비로소 `샤야도`라는 명칭을 사용해 스승으로서 존경할 만한 지도자로 인정받는다.

20안거 이상을 지낸 원로 스님로 구성된 원로회의는 승가의 가장 큰 의결 기구다. 종교성이라는 국가기관의 통제를 받기는 하지만, 19개 종단의 지도자가 모여 구성된 이 기구는 30명 정도의 의원이 있는데 그들은 절대적 지위를 갖는다.

사부대중이 함께 이끄는 미얀마의 사찰 운영 체제는 재가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구조인데 사원의 운영과 승려의 수행에 부족함이 없게 헌신적 뒷받침을 한다. 그래서 미얀마 대부분의 사원에는 승가나 승려가 아닌 신도회가 조직되어 사찰 운영을 한다. 이러한 제도는 재가자들에게 주인 의식을 심어주어 사찰을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도록 이끈다.   

 
 
■ 미얀마 승려는 채식을 고집하지 않는다

미얀마 승려의 하루 일과는 탁발로 시작된다. 오후 불식을 하기 때문에 하루에 한 번만하는 탁발 의식은 사찰에서는 가장 큰 종교적 의식이며 재가자에게는 누구나 보시공덕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갖는 시간이기도 하다.

매일 동 트기 전 이른 새벽부터 9시경까지 모든 승려가 발우를 들고 집집마다 음식을 탁발하는데, 이른 새벽임에도 길가에 나와 기다리는 수많은 재가 신자의 도움으로 탁발에 아무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비구니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과 채식을 하지 않는다.

남방불교는 채식을 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부처 당시부터 승려는 걸식 수행자의 신분으로 아무 음식이나 소중히 공양해야 하는 것이 본분이었기 때문이다. 또 미얀마에는 오래전부터 비구니가 존재하지 않는데, 너무도 엄격하고 비현실적인 계율을 지키지 못해 계맥을 상실했다.

사찰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삭발을 하고 분홍빛 승복 또는 감빛 승복을 두른 사람은 모두 단기 출가자나 의도적으로 신분을 격하시킨 틸라신이다. 이러한 틸라신은 비구와 같은 시간에 탁발을 나갈 수 없어 아침 시간을 제외하고 때를 가리지 않고 조금씩 탁발을 다닌다.

일부는 큰 사원에서 수행을 하며 절의 잡다한 일을 맡아서 하는 불목하니(절에서 밥 짓고 물긷는 일을 맡아 하는 사람) 역할을 하며 사는데, 이러한 틸라신 제도의 밑바탕을 잘 살펴보면 미얀마의 뿌리 깊은 남녀차별주의가 만든 제도임을 알 수 있다. 차별 없는 부처의 법을 외치는 승가의 모순인 것이다.

미얀마 승려는 융통성이 부족할 정도로 계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언제든지 환속할 수 있는 독특한 제도 때문인데, 승복을 입고 있는 동안만은 철저히 지키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선 비구는 8가지 물건 이상을 소유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데, 상의가사, 하의가사, 대가사, 발우, 면도칼, 바느질 도구, 허리띠, 물 여과기 등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계율이다.

부처님 당시의 승려상을 보는 듯한 이런 계율은 지금도 잘 지키려고 노력 하는데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격식에 너무 치우쳐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시계를 차면 파계라고 해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이나 담배는 부처님 당시에 없었던 것으로 율장에 명시되지 않았다 해서 대부분의 승려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 승려는 금품을 받을 수 없다 해서 대신 시자가 받는 것, 탁발은 하지만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보시된 좋은 음식이나 요리된 음식으로 대신 공양을 하고 탁발한 음식은 다른 이에게 나눠주는 것 등이 이런 점을 잘 나타낸다.

이러한 계율 중심의 불교는 승려를 제사장이나 성직자의 성격으로 고착화해 종교영웅주의를 낳아 객관적 진리의 탐구보다 개인의 주관적 수행과 행적에만 치중하는 폐단을 가져오기도 한다.  

 
 
■ 전통적 정신문화의 중심 역시 불교

미얀마의 풍습은 인도 문화와 중국 그리고 동남아 문화의 혼합 형태를 띤다.

미얀마인의 생활에 깊이 뿌리 내린 불교문화는 인도의 영향이 거의 절대적이지만 종교적 이유를 제외하면 오히려 중국 문화의 흔적이 많이 나타난다.

대부분의 소수 종족은 중국계 민족이며 몽골리안의 특성상 의식주 문화에 있어서는 중국의 영향을 친밀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정신문화에 있어서는 여러 종족이 단절되어 살아가야 하는 지리적 특성으로 형성된 원시신앙이 부족들의 분열과 소모적 종교 형태에 한계를 느껴 좀 더 지고한 종교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남방불교가 전래되며 불교는 미얀마 정신문화의 바탕이 된다.

지리적 여건 또한 미얀마의 문화가 혼합 형태로 갈 수밖에 없는 점을 말해준다. 국토의 오른쪽은 중국의 운남성이 접해 있고 왼쪽은 인도의 마니프르 지방과 접해 있다. 그리고 위로는 히말라야 산맥과 맞닿아 있으며 아래로는 벵갈만과 말타반만 지역과 연결되어 동남아 문화와 근접해 있다.

남부 버마에는 본래 인도에서 아리안족에 밀려 이주한 종족과 인도네시아계 원주민이 혼혈을 이루며 살고 있고 중국과 태국 그리고 티베트에서 이주해온 수많은 소수민족은 북부 산악지대에서 무리를 지어 살아간다.

이렇게 다양한 민족의 이동과 정착으로 미얀마의 평원에는 복잡하고 다양한 풍습이 형성되었다.

 
 
미얀마의 풍습 가운데 가장 큰축제는 4월에 시작되는 물축제 `틴잔`인데, 근 사흘 동안 미얀마 전체가 물바다를 이룬다. 서로에게 물을 뿌리는 것은 청정함의 상징인 물로 악업을 씻고자 하는 것이며, 상대방에게도 물을 뿌림으로 축복을 기원하는 것.

또 이 기간은 미얀마에서 가장 무더운 기간으로 우기가 시작되기 직전 더위를 잊고 농사의 시작을 알리며 특히 젊은이들은 평소에 마음을 둔 상대에게 물을 뿌려 애정을 표시하며 공개 구혼을 하기도 한다.

음악에 맞춰 열정적인 춤을 추며 서로에게 물을 뿌리며 1년간 쌓인 모든 근심과 걱정을 발산하고 새로운 한해를 준비하는 축제인 셈이다.

"미얀마 젊은이들이 한 해를 사는 이유가 바로 이 틴잔을 위해서다"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진정으로 미얀마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글ㆍ사진 박순호 기자(YN뉴스ㆍ영남매일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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