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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식의 허튼소리- 44년 전 김해사람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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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식의 허튼소리- 44년 전 김해사람이 되다
  • 경상도 촌놈 조유식
  • 승인 2014.02.18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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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학력 무학으로 기자가 되기까지<20>

함안 칠북에서 마산까지 또 마산에서 김해까지 천일여객 버스를 탔다.

김해행 버스에 오른 필자는 창원 39사 군부대 앞을 지나 덕산 진영 한림 삼계를 거쳐 마종여객 버스정류장까지 왔다.

필자가 김해 살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지금의 김해시민들은 김해마종여객 버스정류장을 기억하는 분들이 그리 많지 않다. 그 시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기도 했다. 김해시 서상동 지금의 농협중앙회와 송한의원 사이 도로 건너편에 있던 마종여객 버스정류장은 막걸리와 대포 잔으로 소주 파는 집 등 잔술집이 늘어서 있어 애주가들이 많이 찾기도 했다.

마종여객은 김해군 읍ㆍ면지역 농민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버스를 기다리는 사이 국수와 국밥도 먹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했던 추억의 장소이기도 했던 곳이다. 마종여객은 김해 관내에서만 운행되었으며 대형버스보다 작은 마이크로버스였다.

마종여객 정류장 인근에 김해군청, 김해읍사무소, 김해등기소, 김해경찰서, 김해극장, 금보극장, 재민병원, 동산병원도 있었으며 병아리 부화를 연구하는 연구소, 종로예식장, 태양예식장, 청동클럽을 비롯하여 대성철공소를 중심으로 주변에 여인숙도 많았으며 방석집도 유명했다.

한마디로 김해의 중심 상업지역으로 지역의 인사들이 다 모이던 곳이다 보니 주변에 대호다방, 태양다방, 부산다방, 대성다방, 금보다방, 김해다방, 명문다방 등 10여 개의 다방들이 성업을 이루기도 했다.

44년이 지난 지금은 대성다방(커피숍)만이 유일하게 역사의 한자리를 지키며 성업하고 있으며 나머지 모든 업종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필자는 마종여객 안쪽 두 번째 국밥집에 들어가 소고기국밥 한 그릇을 시켜 먹으면서 김해읍에 대해 물어보았다.

김해에서 좀 별난 젊은이들이 사는 곳이 어디냐, 좀 유명한 태권도 도장은 어디 있느냐 등등... 필자가 서울서 호텔에 근무할 당시 전라도 출신 주방장께서 주당 학교 강의 중에 한 말씀은 다른 지역 즉, 타향 객지에서 살려고 한다면 가장 먼저 그 지역에서 가장 별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찾아가 자리를 잡으라는 것이었다.

그곳 별난 사람들이 바로 그 지역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과 친해지고 나면 누구도 객지 놈이라고 함부로 괄시하며 따돌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 가장 큰 태권도 도장 등 체육관을 다니라고 했다. 그것도 딱 3개월 식만 말이다.

그 주당 학교 스승님의 가르침대로 필자는 주막집 어머니가 일러준 대성동 논실에 있는 가죽나무집의 방 한 칸을 전세 없이 월세 8백 원을 주는 조건으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당시 김해 읍내에서는 대성동 사람들과 젊은이들이 좀 유별나 싸움질도 잘하고 하여 읍내 애들이 대성동 애들에게는 시비를 잘 걸지 않는다고 일러주었기 때문이다. 말이 보금자리지 퀴퀴한 냄새가 나는 골방에다 싸늘한 냉방으로 먹을 것도 없는 초라한 꿈 많은 청년의 신세는 말이 아니었다.

봇짐을 내려놓고 첫날을 보낸 다음 날, 고물상을 뒤져 4백 원 주고 중고 석유곤로 한 개를 사고는 석유곤로에 필요한 석유 한 되, 쌀 반 되, 보리쌀 한 되, 국수 두 다발, 양은 냄비 한 개, 바가지 한 개, 밥그릇 하나, 국그릇 하나, 수저 한 벌, 반찬 종지 2개, 세숫대야 한 개, 왜간장 한 병을 샀다.

살아 남기 위한 생활필수품으로 돈도 없고 아직 직장도 구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전투식량으로 버티어 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셋방살이 첫날, 완벽하게 마련 된 살림 도구를 이용하여 쌀과 보리쌀을 1/3의 비율로 밥을 했다. 400원짜리 중고 석유곤로지만 화력은 대단했고 밥도 잘 되었다.

김해 와서 처음으로 필자가 만들어 아침 겸 점심으로 먹은 그 밥맛은 천하일품이었다.

비록 맨밥에다 왜간장 한 숟갈 넣고 비빈 것이 전부였지만 그 밥맛은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정도의 꿀맛이었다.(때가 때인지라 필자의 스토리는 금년 8월까지 잠시 접어두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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