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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식의 허튼소리-처음 먹어본 고래고기와 교통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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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식의 허튼소리-처음 먹어본 고래고기와 교통사고
  • 경상도 촌놈 조유식
  • 승인 2013.11.24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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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학력 '무학'으로 기자가 되기까지<10>

필자가 볼모로 잡혀 있던 막걸리 대리점의 길 건너편 성당 앞 노상에서 돗자리를 펴놓고 12가지 맛을 낸다는 고래고기를 파시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이 할아버지는 이틀에 한 번 오전 11시경 고래고기를 가져와 팔고는 4시경 돗자리를 말아들고서는 돌아가신다. 할아버지가 가져오는 고래고기는 인기가 좋아 대부분 떨이를 하고 빈상자만 남는다.

할아버지는 고래고기를 사각으로 된 작은 나무상자 12곳에 고래고기를 부위별로 12가지를 담아두고 손님이 찾는 부위를 팔았다. 하루는 건너편 고래 할아버지께서 늘 구경을 하고 있는 필자를 보고 손짓으로 오라고 하여 그곳으로 갔다.

할아버지는 필자를 보고 어디서 왔느냐 몇 살이냐고 물어 시고는 "니 고래고기 한번 무 볼래." 하시더니 "고래고기는 한 가지도 버릴게 없는 바다에서 제일 큰 물고기인데 12가지 맛있는 맛을 내고 있다."고 설명을 하시더니 "오늘은 3가지 맛만 보거레이" 하시면서 1번에서 3번까지의 통에서 고래 고기를 꺼내 큼직하게 싹둑 썰어 손바닥에 올려 주시고는 소금을 조금 뿌려 주셨다.

필자가 처음으로 고래고기를 맛보는 순간이었다. 할아버지 말씀 따라 아무나 먹을 수 있는 고기가 아니라 아주 귀한 비싼 고기라고 했기 때문에 선뜻 입으로 가져가지 못했다.

아주 천천히 흥분된 속에서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씹는 순간 묘한 일이 벌어졌다. 배를 깎아 놓은 듯했던 그 고기가 입안에 들어가자 말자 사르르 녹으면서 기가 찬 맛을 내었다. 나머지 고기도 정말이지 특이한 각각의 맛을 내었는데 정말 맛이 좋았다.

그날 이후부터 할아버지께서 매일 3가지씩 4일 동안 12가지 고래고기 부위를 다 주어 생애 최초로 12가지의 고래고기 맛을 보았다.

할아버지께서는 손님이 없는 틈틈이 필자가 부산까지 오게 된 사연을 듣게 되셨고 필자를 불쌍하게 여긴 할아버지께서는 수시로 팔다 남은 고래고기를 주변 상가 주인들에게 나누어 주셨는데 상인들에게 주기 전에 항상 필자부터 먼저 불러 돌가리 종이에 싸서 살짝 주시곤 했다.

필자가 그동안 대한불교청년회 중앙회 수석부회장과 종교신문 기자생활을 하면서 울산에 자주 들려 고래고기 대접을 많이 받아보았지만 50년 전 그때 그 할아버지께서 주셨던 그 고래고기 맛을 느껴 보지 못했다.

거르지나 다름없는 남의 집에 버려진 아이에게 그 비싼 고래고기를 아낌없이 주셨던 그 할아버지의 감사함과 은혜를 잊어 본 적이 없다.

생각 같아서는 필자가 배달하는 막걸리라도 한 사발 대접하고 싶었지만 필자의 능력 밖의 일이라 필자는 그 할아버지에게 아무것도 해 드릴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사이 비가 와서 도로가 제법 미끄러운 아침. 온천극장 뒤편 해장국 집에서 주문 들어 온 통 막걸리 한 말을 자전거에 싣고 금강원 입구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순간 자전거가 미끄러져 앞바퀴가 도로 옆 배수구 사이에 끼이면서 뒷바퀴와 막걸리 통이 필자의 머리 위를 날아 앞으로 360도를 회전하며 사거리 중앙에 나가떨어졌다.

막걸리가 담긴 나무로 만든 통이 박살나고 도로 전체가 하얀 막걸리 바닥이 되었으며 마침 달려오던 시내버스에 부딪힌 필자는 인근의 병원으로 옮겨져 입원치료를 받기도 했다.

사고현장을 목격한 막걸리 대리점 사장님께서 놀라셨는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은 필자를 온천장 입구 오시게 주변 철공소에 소개시켜 주어 그곳에서 먹고 자며 산소용접과 페인트칠하는 것을 배우기도 했으먀 양산 울산 가는 삼거리인 기찰에서 자동차 타이어 빵구 집에서 잔심부름하는 일도 했고 동래 브라더 미싱 공장과 신세계 와이셔츠 공장에서 경비원 아저씨를 도와 청소 등 잔심부름을 하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필자의 배다른 형님이 또다시 나타나는 바람에 형님 손에 끌려 열차를 타고 동대구역에서 내려 고가차도 및 술집에 필자를 또 잡혀 두고 달아났다가 20여 일 후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유괴범에 이끌러 간 곳이 울산 성모병원 근처의 요정이었는데 그곳에서도 돈을 받아 챙기고 필자를 맡겨 놓았던 것이다. 필자는 그때부터 아가씨들의 기둥서방이라고 불리는 건달들의 감시를 받으며 손님들의 구두를 닦아주는 일을 했다.

구두를 닦으면서 손님들이 주는 팀을 모아두었다가 한 달 여 만에 그 요정에서 탈출하여 함안 칠북으로 돌아와 사정사정하여 감 씨 자전거포에 다시 취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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