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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안길로 사라진 '해방'의 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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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안길로 사라진 '해방'의 감격
  • 손일선 기자
  • 승인 2009.08.14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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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겪어본 사람은 몰라
 
 
우리나라가 숱한 수모를 당했던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 만세를 부르던 8·15 광복절이 어느덧 64주년을 앞두고 있다.

광복절을 이틀 앞둔 13일 뙤약볕이 내리쬐는 무더운 날씨에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탑골공원에는 할아버지들이 삼삼오오 모여 무료함을 달래며 그늘 바람에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온 나라에 만세가 울려퍼지며 모두가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을 때 걸음마를 막 떼거나 코흘리개였던 꼬마들이 이제는 강산이 변해도 여섯번은 변했을 그 세월을 증명이라도 하듯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가 됐다. 많은 할아버지들은 광복 당시는 너무 어렸을 때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중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광복을 맞았다는 최석웅옹(85·사진)은 깊이 팬 주름살에 검버섯을 남긴 그간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그 때의 감격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36년 동안 일본에 얽매였다가 해방되니 얼마나 좋아. 모든 백성들이 환영했지.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당하다 해방되는 그 기분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 가진 게 없었으니 우리가 축하할 수 있는 일이라곤 모여서 막걸리 한 잔 들이키는 거였지."

최 옹은 놋쇠로 된 밥그릇, 숟가락, 심지어 처녀까지 빼앗을 수 있는 것은 모두 강탈해갔던 일제의 눈길을 피해 쌀을 산에 감춰놓고 몰래 가져다 먹던 아픈 과거를 떠올리기도 했다.

"난 경기도 광주에 살았는데 다 공출을 보냈으니 우리 같이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었어. 그래서 쌀을 산에 감춰놓고 몰래 가져다 먹었지. 말 그대로 노예생활이었어."

최 옹은 우리 역사에 무관심한 젊은 세대들에 대해 아쉬움이 섞인 질타의 목소리도 함께 남겼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해방이 얼마나 좋은 건지 몰라. 똑똑한 애들은 우리 역사를 좀 알고 있다고 해도 다 이기주의에 빠져서 말이야…. 우리나라에 애국하는 젊은이들이 많으면 좋겠네."

김갑석옹(94)은 해방의 날을 무덤덤하게 추억했다. 당시만해도 오지중의 오지라할 수 있는 충청북도 영동군에 살고 있던 김옹에게 '대한민국 만세 소리'는 먼나라의 소식처럼 여겨졌단다.

김옹은 광복절이 한달여가 지난 뒤 영동장터의 소란스러움에서 해방의 실루엣을 비로소 실감했다고 한다.

"왜정때는 그러질 못했는데, 사람들이 왜놈들 욕을 맘놓고 하는거야. 쳐죽일 놈들하고, 이렇게 떠드는데 이런 게 해방인가 싶기도 했지."

흰 모시 한복에 중절모를 쓰고 부채질을 하던 이강윤옹(86)은 "특별한 기억이랄 게 있나. 억눌려 살다가 해방이 되니까 너무 좋았지. 근데 요즘 애들이 그런 걸 보길 했나, 제대로 듣길 했나. 요즘 하는 광복절 행사도 다 이제 형식적일 뿐"이라며 이제는 뒤안길로 사라진 해방의 감격을 애써 되살리고 있었다.

탑골공원에서 모인 노인들은 저마다 갖고 있던 광복절의 추억을 꺼내놓았다. 살던 곳과 하던 일에 따라 느끼는 소회는 개별적이었지만 '벅찬 감격'만큼은 공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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