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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인용, 식민사관 김해시사(史) 왜 발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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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인용, 식민사관 김해시사(史) 왜 발간하는가"
  • 영남미디어공동취재단 신동호 기자ㆍ사진 최지열 기자
  • 승인 2024.06.19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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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역사서가 "김해 역사를 부정하는 내용 실어"
인제대 이영식 명예교수 편찬 부위원장 주장 골격 완성
"우리 역사서 명시 내용 부정하고 굳이 「일본서기」 인용"

20여억 원의 혈세를 들여 우리 역사를 부정하고 「일본서기」를 기반으로 하는 역사서가 발간된다는 논란이 커지면서 시민단체들이 집단행동에 나섰다.

‘식민사관 청산 가야국사 전국연대’ 등 5개 시민단체가 18일 오전 11시 김해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편찬 마무리된 김해시사(史)의 발간을 즉각 중지하고 수정발간 할 것을 요구했다.

시대사 6권, 분야사 6권 총 12권으로 완성된 김해시사(史)의 제 2권 가야사가 서기 42년 가야 건국을 부정하고 식민사관으로 왜곡이 되어있다는 지적이다.

한 시민단체 대표는 “김해의 역사서가 가야 건국을 부정하고 일본의 가야 지배를 기정 사실화하는 등 식민사관으로 점철되어 발간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며 “일본은 이 내용을 증거로 침략의 정당성 근거로 활용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임진왜란, 한일강제병합 등 조선과 중국을 침략할 때 자신들이 일천수백 년 전에 정복했고 지배했던 한반도 땅을 다시 찾아왔다고 주장을 하면서 침공하였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비롯 많은 우리 사료에 명시되어 있는 김해의 역사를 굳이 왜곡 날조된 「일본서기」를 근간으로 서술하는 이유에 대해 답변할 것”을 요구했다.

이와 함께 “시민들과 공청회를 열고 가야의 역사적 정당성을 재고증 후 발간할 것”을 거듭 주장했다.

논란의 가운데 있는 ‘임나일본부설’은 가야를 일본이 직접 지배하였다는 주장으로 2010년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에서 근거 없음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임나일본부’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기로 양국이 합의하였다. 하지만 일본 내 각종 교과서에서는 「일본서기」를 근거로 정설로 싣고 있는 실정이다.

또 다른 시민단체 대표는 “일제는 1919년 3·1 만세 운동이 일어나면서 식민 지배 정책을 문화정책으로 전환했다. 그러면서 ‘심상소학 역사 보충 교재’라고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교사들한테 지침을 내리고 일제 강점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조선의 역사교육 체제 전체를 바꿔버린다. 그러면서 ‘임나를 이 땅에 고정시키라’라는 교육 지침을 내리게 했다”고 역설했다.

수탈과 침략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는 허왕후와 가야불교 도래의 근거인 파사석탑과 광개토대왕비가 일제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근거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우리나라 역사계의 또 따른 벽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김해시사 편찬업무 실무책임을 맡고 있는 하유식 책임연구원(문학박사)은 “우리 손으로 사실상 처음 발간하는 역사서이다 보니 자료집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면서 “김해와 관련된 여러 가지 다양한 시각들을 종합적으로 많이 실어서 정리해 놓는 것으로 방향을 설정했다”라고 하며 “최대한 객관적으로 성심성의껏 해 왔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 알기 쉽게 단권으로 편집할 계획인데 그때는 논란이 되는 부분들을 모두 배제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존의 왜곡된 역사서들도 수정하고 보완해서 올바른 역사관으로 재정립해 나가야 할 것인데 우리 스스로가 우리 역사를 부정하며 「일본서기」의 관점이 내포된 역사서로 새롭게 써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한다.

부산시사(史)의 경우에는 ‘임나일본부설’의 기반을 제공한다는 식민사관 논란 속에 시민단체의 강력한 저항으로 발간 중지되었다.

그런데 부산시사편찬위원회의 실무책임자인 이연심 선임연구원은 김해시사(史) 편찬에 참여하여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한다는 제목으로 김해시사의 한 장(章)을 집필하면서 오히려 ‘임나일본부설’을 기정사실화 하였다.

우리나라 사학계는 여전히 ‘임나일본부설’의 근거가 되는 ‘임나’를 부정하지 않는 학자들과 「일본서기」 자체가 일본 측의 관점으로 날조되었다는 학자들로 양분되어 있다.

김해시사(史) 집필진의 주축을 이루는 이영식, 김태식, 백승충 등의 학자들은 ‘임나’의 실존을 주장하며 김해시사(史) 논란의 중심이 되는 주요 내용들을 「일본서기」에서 인용한다.

따라서 김해시사는 발굴·조사·수집·연구와 집필진 구성 등 초기 단계에서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로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들이 편찬의 방향을 실질적으로 설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실제 그런 방향으로 집필되었다는 비판이다.

극명하게 논란을 일으키는 김해 역사서가 지금까지 한 번도 공개토론 없이 발간된다는 것은 결정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임나일본부설

일본의 야마토왜(大和倭)가 4세기 후반에 한반도 남부지역에 진출하여 백제·신라·가야를 지배하고 특히 가야에는 일본부(日本府)라는 기관을 두어 6세기 중엽까지 직접 지배하였다는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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