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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바다’ 정말로 차디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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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바다’ 정말로 차디찼다
  • 최금연 기자
  • 승인 2007.12.30 2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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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경찰청 김가연 경위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 쪽빛이다. 다시 갈매기가 날고 시리도록 푸른 물결을 헤치며 먼바다로 고기잡이 나가는 어선의 깃발이 찬 겨울바람에 펄럭인다.

12월7일 발생한 허베이스피리트호 원유유출사고 이후 20여일, 청정 바다를 덮친 엄청난 기름띠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바쁜 손길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해상의 엷은 기름막을 찾아내기 위한 헬기와 해경 함정의 엔진 소리는 지금도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끊임없이 이어진다.

절망의 바다를 희망의 바다로 바꾼 ‘태안의 기적’은 분명 우리 국민이 영웅이다. 전국에서 몰려든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인간띠’가 검은 재앙의 시름과 아픔을 희망의 싹으로 바꿔놓았다. 해변에서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삶의 터전을 잃은 수많은 어민들과 피해 주민들의 실의를 달랬다면, 시리고 찬 바다에서는 오일펜스를 치고 뜰채로 기름띠를 일일이 걷어낸 해양경찰의 ‘기름 절은 20여일’이 있었다. 거센 파도와 바람을 이기며 기름과 사투를 벌인 그들은 태안의 기적의 숨은 영웅들이다.

하얗던 해경 함정 갑판이 기름띠로 검게 변했다. 선박 좌우측에서 기름을 걷어 올리는 해경들.

거대한 기름띠 위에 해수를 뿌리는 모습이 텔레비전 영상만으로는 마치 평온한 바다 위에서 한가로이 무지개를 만드는 모습처럼 비춰지는 그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해경간부후보생으로 임용된 김가연 경위가 해경 경비구난함 태평앙5호에서 기름 방제 20여일의 소식을 <국정브리핑>에 전해왔다.

태평양 5호는 사고발생 직후 현장에 투입돼 현장지휘와 함께 방제작업에 참여했다. 김가연 경위가 승선한 태평양5호는 3000톤급 경비구난함으로 배타적 경제수역에 배치돼 해난 구조활동을 수행했으며, 헬기를 탑재할 수 있는 격납고를 갖춰 해상사고 발생 때 현장에 가장 신속하게 투입된다. 태평양 5호에는 김가연 경위를 비롯한 여경 3명 등 경찰관 35명과 전경 16명이 탑승했다. <편집자주>

12월 6일, 맞교대 근무로 피로가 누적된 우리에게 4박 5일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으로 잡힌 출동은 오히려 감미롭게 다가왔다. 그러기에 평소 가득 장만했던 부식(개인별로 준비하는 간식)도 간단하게 준비했다. 몸과 마음이 그만큼 가벼웠기에 직원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면서 웃음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서로의 얼굴조차 쳐다볼 겨를 없는 숨가쁜 사투로 바뀌었다. 우리 태평양5호의 기름띠에 절은 20일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순백색으로 상징되는 해경의 경비구난함이 허베이스피리트호 원유유출사건 방제작업으로 기름에 절어있다.

12월7일 오전 7시 15분, 태안군 만리포 북서방 6.5마일 해상에서 발생한 사고로 우리는 갑작스레 사고현장으로 이동했다. 서장님의 구두 지시로 오전 8시 우리는 전속력으로 태안바다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크레인부선(삼성1호)과 유조선(허베이스피리트호)이 충돌해 해상에서 원유가 1만여톤 가량 유출되는 심각한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급할 수밖에 없었다.

엔진을 최대한 높여 고속으로 항해했다.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직원들은 올해 5월에 발생한 ‘골든로즈호 사건’을 떠올렸다. 그때도 낯선 중국해상 현장에서 직원들이 참 고생을 많이 했다. 결과가 별로 좋지 않아 고생하고도 보람을 찾을 수 없어서 안타까웠는데….

“씨프린스호보다 기름 유출 3배”…기약없는 출동 예고

현장에 도착하자 사고현장을 체계적으로 지휘하기 위해 우리 함정(태평양 5호)이 OSC(On-scene Commender : 현장지휘관)가 되어 효율적인 방제를 할 수 있도록 전략을 세웠다. 오래 근무한 고참 대원들이 1995년 여수에서 ‘씨프린스호’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한 달 이상 현장에서 사고 수습을 했다는 말로 젊은 경찰관들의 마음을 미리 다잡고 있었다. 이번에 발생한 ‘허베이스프리트호’ 사건은 씨프린스호 때보다 기름 유출량이 3배가 넘는다는 언론보도는 기약없는 출동이 될 것을 예고했다.

태평양 5호에서 해경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방제작업을 했고, 이후에도 오염군 탐지에 참여했다.

헬기를 동원해 사고현장의 오염분포군을 찾아내 전략적인 방제작업을 할 수 있도록 지휘부서는 방법을 모색했다. 대형 함정은 소화포를 작동해 기름띠를 분산시키는 작업을 하고, 오염군이 심각한 지역은 유처리제를 살포했다.

기름띠가 다른 곳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오일펜스를 치는 작업도 잊지 않았다. 사고 발생지역은 육상이 아닌 해상이기에 어떤 작업이든지 항상 위험이 따르고 제약이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어려움이 많이 발생한다.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는 기름군에 대한 보고가 예하함정으로부터 올라왔다. 함정 휴대폰이 울려대기 시작했고, 통신망도 불이 나기 시작했다.

뜰채에 양동이·두부판까지 총동원…방제작업 강행군

오염군에 대한 보고가 현장지휘부에 취합되자, 분포도에 따라 작업방법이 달라졌다. 대형함정과 방제정에서는 해경 대원들이 함정 좌우에 붙어 기름띠와 타르 덩어리를 뜰채로 걷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갑판 위에서 해수면까지 거리가 멀다보니 긴 뜰채로 기름띠를 걷어올리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기름덩어리들은 바람과 파도를 따라 이리저리 움직였다. 풍랑과 파도가 이처럼 미울 때도 없었다.

한번에 들어올리는 작업량에도 한계가 있었기에 효율성도 떨어졌다. 이런 가운데 풍랑주의보와 강풍주의보가 발효돼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은 멈춰지지 않았다.

역시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인가보다. 현장 작업의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뜰채가 아니라, 대형 양동이를 줄에 매달아 기름을 퍼담아 한번에 많은 양의 기름을 끌어올렸고, 작업일수가 반복되자 이번에는 두부판까지 줄에 매달아 엄청난 타르덩어리를 걷어 올렸다. 평소에는 발에 채이던 노란 사각 두부판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원유를 걷어내는 작업에는 뜰채뿐만 아니라 양동이와 두부판까지 동원됐다.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지속되는 폐유 수거 작업이 보름간 지속되면서 직원들은 지쳐갔다. 밤에는 서치라이트를 비춰가면서 다음날 작업을 위해 오염군 탐색 작업에 들어갔다. 낮에는 방제작업으로 밤에는 당직으로, 몸이 두 개라도 버텨내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러나 대원들은 하나같이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견뎌냈다.

보름 가까이 되자 정말 집이 그리웠다. 조영훈 경장은 딸 돌잔치를 12월 16일로 예약해 놓았다가 갑자기 방제작업 현장으로 투입되는 바람에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함정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출동이 잦고, 출동 일수가 길다보니 친구들 애경사, 친척들 모임 등에는 참석율이 저조하다. 함정에서 오래 근무하게 되면 친구가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속설은 거짓이 아닌 것 같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쁜 딸일 텐데…. 그 아기가 자라면 해양경찰인 아빠를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아기가 자라면 빵점 아빠·엄마를 이해해 줄까

김희정 경장은 여섯 살짜리 아기를 둔 엄마다. 여경이 함정에서 근무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모험이고 고통이다. 업무에서는 누구에게나 뒤지지 않지만, 몸을 많이 써야 하는 함정근무의 특성상 힘든 일을 여경이 모두 감당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게다가 엄마의 손이 많이 필요한 아기를 두고 함정에서 근무해야 하는 엄마의 어려움을 누가 알아 줄까? 골든로즈호 사건 때도 보름 가량을, 이번 태안방제현장에서는 보름이 넘게 바다에 있다.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매달 최소 두 번 정도 7박 8일간의 출동으로 딸의 얼굴을 보기 어렵다.

김 경장은 아마 딸에게 빵점짜리 엄마일 것이다. 방제작업현장에 있는 동안 꼬마가 감기에 걸려 많이 아프다는 전화도 왔다. 김 경장은 아빠가 아무리 잘 돌보더라도 엄마 손이 없으면 이렇게 티가 난다며 마음 아파했다.

강희영 순경은 지난달 25일 결혼한 풋풋한 신혼이다. 보름도 안 된 단꿈은 온데간데없고, 신부보다 뜰채를 더 가까이 하며 산다.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출동을 했는데, 이번에는 태안에서 보름 동안 방제작업을 한다고 새색시 얼굴도 제대로 못봤다. 매일 기름띠를 걷어내어서 그런지 안 그래도 까맣던 얼굴이 더 촌스럽게 변했다. 아마 신부가 몰라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신혼이면 뭐하나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이렇게 해양경찰관에게는 애환이 많다. 하지만 개인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방제작업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해경의 사명이고, 그러기에 해양경찰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16일간 우리 함정에서 걷어올린 순수 폐유만 15톤에 달했다. 폐유가 쌓일 수록 직원들은 지쳐갔다. 하지만 뭍에 닿지 못하는 해경들의 모습은 뉴스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현장에서는 정말 혼신을 다하여 노력하고 있는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것이 해경의 숙명인 것을.

자연의 힘은 놀랍다. 시일이 지나자 기름띠의 상태가 또 달라졌다. 온도변화에 따라 응집력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기름띠군이 집중적으로 발견될 때마다 그 현장으로 이동해(지도 참조) 대형함정에서는 리브(RIB:고속고무보트)를 바다 위로 내려 뜰채나 바가지를 이용해 폐유수거 작업을 시작했다.

고무보트에서 유흡착포를 사용해 본격적으로 기름띠군을 걷어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폐유는 타르 상태로 변해 유흡착포로 작업하기에는 어려움이 생겼다. 이제 일일이 걷어내야 한다.

소형 고무보트도 흡착포를 이용해 유출된 원유를 걷어냈다.



어민과 바다가 웃음 찾는날, 우리 해경도 웃음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해양경찰은 소명의식과 봉사정신으로 모든 일을 지혜롭게 극복해왔다. 그러기에 우리는 해야 하며 또 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해양경찰은 지금 이 순간에도 태안 사고현장에서 방제작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리 해양경찰에게는 꿈이 있으며, 끼와 깡으로 이 위기를 극복할 것이다. 그러기에 해양경찰은 살아 있다. 바다가 완전히 예전의 모습을 되찾는 날, 어민들이 만선의 기쁨을 누리며 웃음을 되찾는 날, 우리 해경 대원들도 다시 웃음꽃을 피울 것이다.
해양경찰의 기름절은 조끼

방제작업 참여 전의 태평양 5호 승무원들. 맨 오른쪽이 필자인 김가연 경위, 그 옆이 여섯 살 아이를 둔 '빵점짜리 엄마' 김희정 경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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