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시 대표하는 축제인 `김해줄땡기기` 민속 행사가 화려하게 부활한다.
김해줄땡기기는 용(龍)의 형상이 암수줄을 교합시켜 용을 기쁘게 하여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그해 풍수해를 막고 적당한 비와 기온으로 풍년이 들게 기원하는 세시풍습의 하나이다.
즉 농경사회에서는 줄땡기기는 신앙과 같은 것이다.
이에 따라 경남에서는 ▲영산 줄당기기를 비롯해서 ▲영산 골목줄당기기 ▲진동 큰줄 당기기 ▲밀양 감내 게줄당기기 ▲남해 선구줄긋기 ▲의령 큰줄땡기기 ▲함안 삼칠줄다리 등이 행해지고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팔매싸움, 홰싸움, 석전놀이, 용마놀이 등 축제형식으로 펼쳐졌는데 놀이하는 시기는 정월대보름 무렵에 하는 형태와 특별한 경우 임시로 행하는 형태가 있다.
일반적으로 양편으로 나뉘어 패싸움을 벌이기 때문에 줄당기기를 편싸움이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아름다운 전통 문화인 김해줄땡기기의 맥을 이어가며 후배들에게 가락인의 자부심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박덕규 전승회장을 만나 보았다.
▲ 박덕규 전승회장. |
- 김해줄땡기기의 유래를 알고 싶어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의 정확한 기록이 없으나 김해읍지에 보면 조선시대 읍성의 좌ㆍ우부가 나뉘어 동문밖 옥골방천(지금의 동광초등학교 정문에서 김해중학교 후문으로 흐르는 옥류천)에서 정원보름에 줄댕기기를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1900년대에 들어와 지금의 종로를 비롯해서 왕릉앞길과 가락로 등에서 1943년 까지 행해 지다가 광복후 중단됐다는 것. 1963년 11월 제3회 가락문화제때에는 全 읍ㆍ면이 가닥줄을 드려(새끼꼬기) 소달구지에 싣고 왔서는 지금의 합성초등학교 앞에서 옛 관광호텔 후문에 이르는 길이 약 1km 굴기기 직경 약 1.3m의 거대한 줄을 만들어 全 군민이 참여하는 대대적인 줄댕기기가 행해졌답니다. 1999년 가락문화제때 부터 지금까지 그 해 사정에 따라 간단히 행해지기도 했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본인이 초등학교 3학년때 직접 달구지 바퀴를 이용해 줄 드리는 모습을 보았으며 당시 직접 줄 제작에 참여했던 정창수씨(1943년생)의 증언과 조언에 의하면 김해줄은 특징을 살려 제작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 김해줄땡기기는 어떻게 만드시나요?
"먼저 가닥줄 드리기를 하는데 길이는 120m이고 96가닥입니다. 8가닥씩 묶은 다발 3가닥을 수레바퀴 3대에 각각 묶어 돌려가면서 합삭하여 굵은 줄(지름 40cm)을 좌ㆍ우부 각각 2개씩을 만들어 반으로 접어 4가닥이 되게합니다."
또 "이 줄을 2층으로 포개어 곁줄을 달고 암줄과 숫줄의 `고`를 만들어 암줄의 `고`를 좌우로 벌려 숫줄의 `고`를 가운데에 밀어 넣어 비녀을 꼿아 주면 줄을 완성되는 것입니다."
- 김해줄땡기기는 어떻게 치뤄지는가.
"줄 제작이 끝나면 각각 11대의 수레에 싣고 김해시가지를 한바퀴 돌면서 풍물패와 수 많은 깃발을 나부끼며 분위기를 고조시켜 줄꾼들을 불러 모음니다. 줄땡기가 장소에 도착하면 줄을 마주보게 한후 줄 고사(告祀) 를 지낸후 `고`를 연결하여 시작 타징과 함께 줄댕기기가 시작됩니다"
그러다 "서로가 승부욕에 혼신을 다해 줄땡기를 하다보면 힘이 소진되어 기운이 빠지면 쉬었다가 또 땡기기를 반복합니다. 이러다가 한쪽이 많이 끌려가면 종료 타징이 울리면 끝납니다."
이러한 줄땡기기는 "그해 김해줄댕기기에서 우부가 이기면 풍년이 들고 다산을 하며 좌부가 이기면 나라가 편안하고 지역에 경사와 발전을 가져온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결국에는 어느 편이 이기더라고 좋은 쪽으로 미래지향적이고 긍정적으로 해석하죠."
- 박덕규 회장님은 언제부터 이 일을 해왔나.
"초등학교 시절부터 관심을 가졌나 봐요. 청년시절에는 영산 등지에 줄땡기 현장을 쫓아 다녔죠. 1999년 가락문화제 사무국장 재직때 줄땡기기를 부활도 했고요. 아마도 그때부터 김해줄땡기기의 자료수집 했고 1963년 당시 참여 했던 분들을 찿아 다니면서 증언 녹취등과 더불어 당시의 상황과 줄의 모습 등을 사진을 통해 지금까지 확인해 오고 있지요."
- 김해줄땡기기을 사랑하시나요?
"그럼요. 본인은 여지껏 거의 20년간 줄제작과 줄땡기기 진행을 해 왔습니다. 여러가지 자료등을 수집 보관해 오고 있느니 천직이라고 해야 하나요 하하~. 한술 더 보태서 이야기 하자면, 줄땡기기를 김해지역 문화재로 보존하고 전승한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제 마음입니다."
- 김해줄땡기기가 김종간 前 시장때 중단 되었다던데...
"김종간 前 시장때는 계속 되었으나 김맹곤 前 시장 당선 후 다음해 부터 중단 되었지요. 이번 허성곤 시장이 당선된 후 지역문화재 계승발전의 지대한 관심으로 다시 시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참 잘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지원은 어떻게 되나요?
"현재로는 가야문화축제에 예산을 일괄 지원하여 제전위원회에서 예산을 집행하고 있습니다. 줄제작 과정에 많은 인원이 동원되어야 할때는 시(市) 차원에서 읍ㆍ면ㆍ동의 이ㆍ통장들을 동원하여 협조해 주고 있어 인원조달에는 별반 문제가 없습니다."
- 김해줄땡기기를 문화재로 등록할 수 있을까요?
"가능하다고 봅니다. 김해줄의 특징이 뚜렸하고 전승(傳承) 되어온 자료들이 확실하기 때문에 김해시에서 의지를 갖고 예산확보와 지속적인 관심만 가져 준다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 신명나는 줄땡기기가 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은 김해시민들의 관심이고 참여도 입니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축제, 즐기는 축제라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며 또한 기획과 진행을 좀더 연구하고 보완할 필요도 있습니다."
- 타 지역의 줄땡기기와 비교한다면?
"줄의 제작법이 특이하고 `고` 걸기가 쉽고 줄이 포개어 져 있으며 장군의 칭호가 총사령, 부사령 등 명칭 또한 특징이 있습니다. 별칭으로 편장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 정도 명칭만 가지고도 대한민국 어느 지역 줄땡기기 보다 문화재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봅니다."
-재미나는 이야기 꺼리가 있다면.
"너무 많죠. 옛날에는 서로 이기기 위해 몰래 상대편의 줄에 칼집을 내어 끊어지게 하기도 했고 여성들이 줄을 넘으면 부정(不淨)을 타서 이기지 못한다해서 밤새도록 번(番)을 서기도 했답니다. 또 이긴 줄을 끊어서 지붕위에 얹어 두면 사악(邪惡)한 기운이 물러가고 경사스러운 일이 생긴다 했고 허리에 두르면 허리병이 싹 낫게 했으며 소에게 먹이면 소가 병치레 없이 잘 자란다고 했답니다."
더 있죠. "줄을 짤라다가 마을 당목(堂木)에 감아 옷을 입히기도 했고 `고`를 거는 과정에서 좌ㆍ우부가 재담들을 주고 받는데 /좌부 연장이 탱탱 달았네/ 우부 합자가 퉁퉁 부었네/ 퉁퉁부은 합자 벌려봐라/ 달안 좌부가 먼저와라/ 등 가벼운 음담(淫談)들이 오고가기도 했다는 재미있고 재치있는 아름다운 풍습이었습니다."
-김해시민들에게 한 말씀하신다면.
"김해줄땡기기에 많은 관심을 가시시고 오는 9일 오후 3시반에 김해교육지원청 앞 도로에 오셨서 함께 즐기시고 많은 복을 받아 가시기를 바랍니다. 줄 한번 땡기는데 복(福) 한번 더 들어온다지요. 줄땡기기 전승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회원으로 참여 해 주시면 더욱 감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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