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이비인후과의원에 앉아 있는 평화의 소녀상. |
"일본의 왜국된 역사를 똑바로 직시하면서 위안부 진실을 바로 알리고 다시는 이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김해시 내동에 자리한 서울이비인후과의원에 머리를 단정하게 빗은 단발머리에 한복차림의 소녀가 외로이 앉아 있다.
김해지역에서 최초로 태어난 '소녀상'이다.
그것도 사람들이 오가는 바깥도 아니고 실내에서 그리고 병원이라는 곳에서 소녀는 그 시절에 멈춰 서 있는 것이다.
최근 소녀상 건립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김해지역에서도 이렇게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되어 화제거리가 되고 있다. 소녀상 이름은 '분노와 용서의 비'다.
이 소녀상은 한 개인병원에서 세워지는 첫 사례가 된다는 의미에서 더욱 뜻이 깊다.
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함은 물론이다.
정태기 원장은 "우리 병원에는 아이들이 많이 왔다갔다 다니고 있다"며 "우리 역사를 잊으면 이런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후손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 이렇게 세우게 됐다"고 소녀상 설치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소녀상을 건립하게 된 동기는...
"우리민족이 주변 강대국에 쌓여있습니다. 많은 역사적 속에서도 피해를 입은 민족은 그 역사에서 가장 야만적이고 비극적인 것으로 보는 것은 위안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 피해를 입은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의미를 매우 크게 두고 있습니다."
-소년상이 특징이 있다고 했는데?
"우리가 만든 소년상은 앉아있는 모습의 현상입니다. 그러나 의자가 없는 곳에서 앉아 있습니다. 아직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채 떠도는 영혼을 상징했습니다. 받침대에는 일본군의 군화 자국이 새겨져 있습니다. 오른손은 분노를 표현했으며 왼손은 화해와 용서를 바라는 모습을 담고 있는 그런 소녀상입니다."
-소녀상 건립 비용도 만만찮아을 텐데?
"실제로 제작 비용은 많이 들지만, 조각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변재봉 조각가 선생께서 재능기부를 하면서 비용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1300만원 정도 부담 했을 뿐입니다. 그 분 덕택으로 비용을 많이 절감했습니다"
-개인병원에 건립 하게된 동기가 있다면?
"1991년 8월달에 위안부의 존재가 처음으로 우리 역사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개인적으로 바쁜생활을 하다보니 무관심 했고 그로인해 그분들에게 해 줄것이 없는 상황이 죄송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용서를 비는 마음을 담아서 소녀상을 건립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한 일이 없었다는 자책감을 표출한 셈이다.
-병원장님의 역사관은?
"제가 읽는 책은 주로 역사에 관련된 것들이 많습니다. 역사는 마주해야만 진정한 의미가 나타난다고 봅니다. 아픈 역사에는 가해자는 쉽게 잊을수는 있지만 피해자는 영원히 잊지를 못합니다. 이러한 '위안부 역사'를 외면할 수가 없는 거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강조하는 대목이다.
-개인병원에서 소녀상 건립이 부담스러울텐데요...
"처음 계획을 끝냈을때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병원의 지하에 가야해야 하는데 제가 가지고 있는 미안함을 표현하다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현재 역사의 동시대를 살아가는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환자들은 약간 부담감을 가지기도 했으나 지금은 되레 경건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 강태기 병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