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김해중부경찰서 유치관리팀장
아침에 출근을 해 휴대폰을 보관하기 위해 꺼내는데 진동이 울렸다. 평소 아침에 전화를 잘하지 않는 큰형님의 전화번호가 뜨기에 받으니 외할머님이 돌아가셨다 한다.
출근길 추적추적 내리던 빗소리만큼이나 긴 여운을 남긴 한마디에 화들짝 놀라 달력을 쳐다보았다. 금요일이다. 3일장이면 일요일이 출장하는 날이다. 하염없는 배려에 거듭 놀라며 애써 태연을 가장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댓돌을 닦고 흙먼지 나는 마당을 정성스럽게 빗질한 후 물을 뿌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이웃마을에 사시는 외할머님이 오셨다. 외할머님이 오시는 날 밥상에는 귀한 계란찜이 올랐고 어떤 날에는 씨암탉을 잡은 고깃국이 나왔기에 그저 좋았다. 밤새워 대담배를 피우며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는 할머님과 외할머님의 잔기침 소리에 밤은 그렇게 깊어갔고, 아침이 되면 떠나는 외할머님의 그림자가 못내 아쉬웠다.
밀양시 초동면 반월리의 낙동강변 최부자 집에서 태어나 이웃마을 외할아버지에게 시집가 큰딸인 어머니와 외삼촌, 그리고 이모를 낳은 외할머님은 일찍 요절한 외할아버지를 한평생 가슴에 품고 혼자 어린 세 남매를 훌륭하게 길러내신 당당한 여장부셨다. 철이 들어 산기슭을 돌고 돌아 외갓집에 가면 꼴머슴 한명에 어른머슴이 둘 있었고, 쌀이 많이 들어간 밥에다 밤참으로 군고구마를 덤으로 내어놓아 마냥 좋았다.
일본에서 중학교를 나온 외숙모는 깔끔하지 못한 생질이 못미더워 조금은 타박도 하였지만 잔잔한 미소로 말없이 외손자들을 감싸시던 외할머님의 크신 은혜로움을 가신 뒤에야 알고 슬퍼하다니 나란 놈은 정말 정 없고 멋 또한 없는 놈인가 보다. 이십년 전에 큰손녀를 먼저 보내고 얼마 있지 않아 외아들과 며느리를 차례로 보낸 후 큰손자 집에서 사시다가 한 많은 삶을 마감하신 104살 외할머님의 영전에 극락왕생을 기원 드리며 삼가 명복을 빌어본다.
“이제 잊아 뿟다, 이제 됐다.”며 외할머님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오히려 가족들을 위로하시던 83살 어머님은 요즘 들어 외할머님이 생각나시는지 낮술을 한잔 드시면 괜히 눈물이 난다며 긴 한숨을 쉬신다. 불가에서는 생사를 일러 한줄기 구름이 모였다 바람에 흩어지는 것이라 하지만 언제 다시 인연 따라 모여 웃을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주변에는 책임을 지는 어른이 되고자 하는 노력이 조용히 일고 있다.
삼척동자가 알고 있는 단순한 진리라도 이를 실천치 못한다면 공염불이다. 이제라도 숙연의 인연으로 맺어진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좀 더 견고히 하기 위해서 내가 가진 모든 아상을 내려놓고 차자에게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고향에 계신 부모님에게는 저녁 문안인사를 한번이라도 드려보자. 철든 후에 부모님을 모시고자 하나 부모님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선인들의 가르침이 사무치게 가슴에 와 닿는 오늘, 그렇게 오월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