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유행을 참 잘 따른다. 새로운 스타일의 옷이나 액세서리가 조금 눈길을 끌기 시작하면 금방 유행한다. 뉴욕에서 유행한 것을 다음날이면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서 볼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세계적인 화장품회사의 최고경영자나 패션디자이너들이 “한국에서 유행하면 세계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곤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멋에 관한 안목이 그만큼 좋다는 뜻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쉽게 한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심하다는 의미도 된다. 심하게 말하면 겉치레나 외관상 체면에 너무 집착한다는 의미는 아닐까.
이렇게 유행에 민감하고 멋을 부리고 변화를 잘 따라하는데 과연 우리의 의식구조나 법·제도는 그만큼 유연하게 변화하는가. 기업경영 부문에서 특히 노동과 관련된 내용에 있어서는 관행이나 의식구조 등이 고집스럽게 바뀌지 않는다. 특히 가장 완고하게 바뀌지 않는 것이 바로 고용양태와 근무체계이다. ‘모든 근로자는 정규직이어야 한다’라든지 ‘9 to 6’라고 표현되고 있는 ‘전일제 근무자가 아니면 알바다’라든지 하는 편견이 바로 그러하다.
우리 경영관리자들은 자주 ‘21세기는 소프트경제 시대다’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제품이나 서비스에 이런 유연성을 강조한다. 그런데 정작 고용양태나 근무체계를 유연하게 운용하는 데는 거의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물론 정규직에 비해 비정규직이, 전일제 근무자에 비하여 시간제근로자가 상대적으로 불합리한 처우를 받기 때문에 근로자들이 반대하는 것이 주요한 원인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근로자를 설득하고 부당한 것을 시정하면서 경영비용을 낮추고 생산성을 높여 초경쟁시대에 지속경영을 위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고용양태나 근무체계를 유연하게 운용하는 것은 경영관리자의 몫이다.
우리의 생활수준이 거의 선진국 수준에 올라와 있다고 말한다. 일을 한다는 의미도 오직 직장에서 돈을 벌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어떠한 경우에도 회사에 복종하며 마치 감정 없는 도구처럼 존재하는 것이라는 종전의 인식을 벗어나 있다. 이제는 ‘일과 삶의 공유’라는 말이 보편화되어 있다. ‘소프트’는 기업이나 단체가 제공하는 상품이나 외부고객에 대한 서비스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소프트한 상품생산이나 서비스를 제공해내야 하는 기업이나 단체의 구성원들이 일하는 체제도 소프트해야 한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전철과 버스를 타고 정시에 직장에 출근해서 관리자와 대면하고 자리를 지키고 앉아 눈도장을 찍어야 일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유연한 근무체계를 거부하는 의식은 구성원 대다수를 점하는 일선 근로자보다 특히 권위적인 관리자들이 심하다. 관리자들부터 솔선수범하여 유연한 근무체계를 인정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저 변하는 게 싫어서, 그보다 먼저 매일매일 그대로 하는 게 편하니까 그냥 두는 고지식한 생각이나 행태를 빨리 벗어던져야 한다.
지금 이 시대를 ‘뉴-노멀(New-Normal)’, 즉 ‘새로운 정상(正常)’의 시대라고 한다. 물론 글로벌경제가 종전과 달리 고성장이 거의 불가능해진 상태라는 의미지만, 마찬가지로 이제 9 to 6, 전일제 근무, 출근과 눈도장 등의 고지식한 용어가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유연근무제-재택근무’, 시차출근제, 시간제근로 등이 새로운 정상이라고 여기는 경영과 노동체제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