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시 봉황동의 사적 제2호인 회현리 패총이 김해시의 관리부실로 유적지로서의 기능이 마비돼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해패총은 사적지로 지정되면서 김해시가 특별관리 해오고 있지만 형식적인 관리만 하고 있다는 비난도 일고 있다.
본지에 제보를 한 패총주변 주민들에 따르면 패총 정상부의 고인돌 주변은 365일 남녀 불량 청소년들이 밤낮으로 모여 담배를 피우고 술과 음식까지 해 먹는 놀이터가 된 지 오래라는 것이다.
▲ 불이 나고 난 후 나붙은 불조심 홍보 현수막. | ||
17~18세 정도의 남학생으로 보이는 덩치가 제법 큰 아이가 거의 매일 10세에서 15세 정도의 남녀 아이들을 모아놓고 기합도 주고 매질도 하면서 무언가를 지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특히 12시가 넘은 한밤에는 여자아이들의 비명소리가 간간이 들리기도 하는 등 우범지역이 돼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발차기 등으로 사적지 주위에 세워둔 조명탑 10여 개의 상층부가 부러지거나 파손되어 방치되고 있었다.
특히 이 조명탑은 고 전류가 흐르고 있어 감전사고의 위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1/3 이상 파손된 시설의 전선이 노출돼 있었다. 무엇보다도 파손된 이 조명탑이 사적지의 환경을 크게 훼손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은 생활 쓰레기를 버려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기도 했다.
▲ 아이들의 불장난으로 타버린 유적지 잔디와 대나무. | ||
들어가지 못하도록 설치했던 울타리 와이어는 고리가 떨어져 있고 언덕 석축도 일부 무너져 있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패총 정상 고인돌 사이에서 시작된 불씨가 고목과 대나무 숲으로 번져 일부 대나무와 잔디를 태우며 불길이 확산되다 소방서의 긴급출동으로 소진되기도 했다.
주민들은 아이들의 소란 등 우범지역이 되고 있는 부분과 파손된 유적 부속물의 보수와 철저한 관리 등을 신고하고 건의했지만 공무원들이 나와 보지도 않는다며 김해시를 원망했다.
주민들은 패총 상층부 주변에 밝고 높은 가로 등을 설치하면 야간에 아이들이 모여드는 우범지역이 안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김해시가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주길 바라고 있다.
▲ 무너진 석축이 나뒹굴고 있다. | ||
김해패총이라는 명칭은 이 조개더미의 처음 발견자인 이마니시가 1907년 붙인 것이지만 조선총독부에서 1933년 8월 27일 사적지로 지정하면서 ‘김해회현리패총’이라고 정식이름을 붙였다.
이 조개더미는 봉황대의 동쪽 기슭으로 동서가 긴 표주박형에 가까운 작은 구릉 위에 위치해 있다. 규모는 동서 길이 120m, 남쪽 너비 30m, 높이 6m 정도이다. 중앙부 2개소에 자연 암석이 노출된 것 외에는 대부분 잔디로 덮여 있고, 동쪽과 남쪽에는 대나무가 우거져 있다. 조가비[貝殼]는 구릉 정상부를 중심으로 남쪽과 서쪽에 집중적으로 두껍게 쌓여 있는 반면, 동쪽과 북쪽 정상부는 얇게 깔려 있다.
1920년 발굴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조가비의 퇴적층위는 상층과 하층의 구별이 뚜렷했으나, 출토유물의 내용 면에서는 특별한 시기차를 찾지 못했고, 조개더미 속에 있던 조가비 종류는 굴ㆍ백합 등 34종과 4종의 갑각류(甲殼類)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 화재로 타버린 대나무숲. | ||
1934년 12월부터 1개월에 걸쳐 가야모토가 발굴한 무덤들은 이 조개더미 동쪽 정상부 주변에 위치해 있다. 조사결과 고인돌[支石墓] 1기, 석관(石棺) 5기, 옹관(甕棺) 3기와 움집자리ㆍ화덕ㆍ돌축대가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