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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김해 사람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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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김해 사람들 -2
  • 경상도 촌놈 조유식
  • 승인 2009.04.18 2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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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에 집단폭행 잡고보니 아...

옛 가락문화제전위원회 시절, 필자는 감사로써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하고도 제전위원장,기획실장,야시장책임자 등으로 부터 6차례나 고소를 당하여 김해경찰서와 경남지방경찰청에 불이 나게 불려 다니면서 조사를 받았다.

무보수 감사로써 아무런 이익도 없는 직책을 떠안아 소신껏 감사를 한 죄로 시도 때도 없이 불러댔다.

당시 제전위원회에서 필자가 회장을 맡고 있던 단체에 준  행사지원비를 어디에, 어떻게 사용 했으며 영수증은 있느냐 부터 입출금 통장 사본까지 요구하며 경찰들이 직접 현장 확인까지 했다.

강압적이고 모욕적인 발언과 인신공격까지 해대던 수사관들이 두 달 여 동안 조사를 하고도 아무런 혐의가 없자 그때부터 고분고분하더니 자기들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청와대 부터 위에서 압력이 들어오니까 어쩔 수 없었다며 사과를 했다.

결국 6건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김해 유지들의 단결력과 위세를 절실히 느꼈다.

다행히 필자의 딱한 사정을 들은 종교단체와 환경단체 회원들이 감사 결과를 공개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시민 서명운동에 돌입하여 3만여명의 시민들로 부터 서명을 받으며 사회여론화 되자 결국 위원장은 사퇴하고 사무국장은 처벌을 받았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어느 날 김해시 불암동에 사는 J 모 군이 필자를 찾아와서는 양심선언을 하겠다고 하여 그 내용을 들어보니 약 2개월 전에 김해 유일의 모 주간신문사 임 모 기자가 시켜 필자의 사무실 책상 아래 도청장치를 해놓고 그동안 감청을 해 왔다고 했다.

그리고 사무실 출입자와 필자가 만나는 사람 등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를 해 왔다는것이다.
즉시 확인을 해보니 고성능 소형 도청장비가 부착되어 있었다. 지금도 그 장비를 가지고 있지만 당시는 너무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필자가 임 기자를 만나 도청한 이유를 물으니 그저 죽을 죄를 지었다며 용서해 달라고 한다.

임기자는 필자를 보고 "회장님 제가 말을 하면 죽습니다" "저 소원이 일간지 기자 한번 해 보는 것니다. 은혜에 보답하겠으니 제발 용서를 해 달라"고 애원을 한다. 바닥에 굻어 앉아 울면서 비는 데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아침 양심선언을 한 J 모 군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도청 지시를 한 신문사의 이 모 국장과 직원들이 불암동 자기 집으로 찾아와서 자동차에 강제로 태워 김해경찰서 수사과장실에 끌려 와 있다고 한다.  필자가 경찰서 수사과장실로 달려가 불문곡직하고 J 모 군을 데리고 나왔다.

J군의 말에 의하며 신문사 이 모 국장과 수사과장이 의논하기를 도청장치에 대해서는 일체 모르는 것으로 하고 양심선언도 없었던 것으로 하라고 강요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 신문사와 임 모 기자가 운영하는 가게를 찾아가 항의하다 기물을 파손하기도 했지만 도청장치는 빙산의 일각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일일이 다 밝힐 수는 없지만 경찰이 필자의 10년 전 행적까지 조사하여 구속시키려 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창원지방검찰청 특수부 허 모 검사실에 불려가 조사를 받으면서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그 검사가 “당신같은 사람이 많아야 세상이 깨끗해지는데 정의로운 일 하려다 큰 낭패를 당할 뻔 했다 " 며  ”내가 조치를 취해 놓을테니 앞으로 열심히 사회정의를 위해 일하라“고 한다.

현명한 검사 덕분에 자유의 몸이 되었고 나중에 그 검사가 좀 보자고 하여 갔더니 김해출신 KBS 창원총국 박 모 기자를 소개시켜 주면서 애로사항이 있으면 언제든지 의논하라고 한다.

그로부터 3일째 되던 밤 10시경,  김해중학교 뒤쪽 골목에 있는 필자의 집으로 걸어가는데 누군가 뒤에서 주먹으로 후려친다.

여기저기서 주먹과 발길질로 폭행을 당했지만 어두운 골목길이라 누군지 알 수는 없었고 다만 네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갑자기 죽도록 맞으면서도 그 중 한 놈의 허리혁대를 잡고 늘어지면서 주변에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비명소리를 들은 사거리 주막집의 주인 안 모씨가 달려오자 세 사람은 도망을 가고 필자에게 허리를 잡힌 한 놈만 도망을 가지 못했다.

그 놈을 끌고 식당가게 안으로 데려가서 보니 그 놈은 다름이 아닌 제전위원장의 아들이었다.
필자는 피투성이가 되고 어금니가 흔들리는 상처를 입어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다음날 김해시 의회 박 모 의장이 연락이 와서 만났더니 그 놈들을 용서해 주고 고소를 하지 말라며 부탁을 한다.

김해가 시끄러워지면 서로 좋을 것이 없다면서 말이다.

말이 부탁 이었지 압력이고 협박으로 들렸다. 

팔자에 없는 감사 한 번 했다가 맞아 죽을 뻔 했는데도 김해가 시끄러우면 안 된다고 참으라고 한다.

“그래 참고 용서하자” 이렇게 마음 먹고 그들을 신고하지 않고 용서를 해주었는데 아직까지 사과 한마디 없고 그 때 치료비는 몽땅 필자가 부담했다.

김해사람 한번 건드렸다가 구속될 뻔 하기도 했고 맞아 죽을 뻔 했다. 오래 살고 싶으면 김해에서 감사 같은 건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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