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굴 수난 금은아미타여래좌상
금은아미타여래좌상(金銀阿彌陀如來坐像·높이 15cm). 이 불상은 불상과 대좌, 그리고 광배가 따로 주조되어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 여래상은 순금이고, 대좌와 광배는 은에다 금을 입혔다.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 초기의 불상으로 추정되는데, 연화대좌 위에 석가여래가 중품상생인(中品上生印)을 짓고 앉아 있다. 뒤에는 불이 타오르는 형상의 광배가 붙어 있고, 대좌는 평면 6각형의 3층 기단과 앙련(仰蓮)의 대로 이루어져 극히 아름답다. 특히 대좌에 금을 입힌 방법이 두드려 누르는 수법으로 제작되었는데, 이는 현대의 세금 기술로도 불가능한 고도의 기술이다. 왜냐하면 잘못하면 은판이 째지거나 한쪽으로 쏠려 두께가 일정치 못하기 때문이다. 1966년 어느 봄날, 이 불상을 구입하려던 이병각이 급히 금속유물 감식가인 김동현 선생을 불러 자문을 구했고, 귀한 불상이라고 김 선생이 말해주었다. 그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형사들이 들이닥쳐 김동현 선생을 연행해 갔다. 사건의 전모는 이랬다. 경주 남산에는 남산사(南山寺)라는 황폐화된 절이 있는데, 그 앞마당에는 3층 석탑이 두 개나 서 있다. 일확천금을 노리던 도굴꾼들이 현재 보물 제124호인 ‘남산사지의 3층 석탑’을 자키로 들어올려 이 불상을 도굴했다는 소문이다. 그들은 문화재보호법 위반이란 죄목으로 구속 수감되었으며, 이 사건은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 당시 재계의 거물이던 이병각도 장물취득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는 변호사를 선임했는데, 사건의 맥을 잡은 변호사가 그 즉시 김동현 선생을 찾아가 증언을 부탁했다. 김동현이 그 불상을 가짜라고만 진술하면 모든 사람들이 풀려난다는 요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가짜일 경우 문화재가 아닌 공예품이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집요하게 증언을 부탁했고, 김동현 선생은 그러한 증언을 하면 이 불상은 영원히 가짜가 되어 더 이상은 제 구실을 하지 못할 것이 염려되었다. 그러나 가깝게 지내던 이병각의 감옥 생활도 보기 어려웠다. 결국 김동현 선생은 불상을 가짜라고 증언했다. 이 증언으로 이병각은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후 일본의 불상 권위자 마치하라가 초대되어 이 불상을 확인하는 절차가 있었다. 그는 “한국 사람들만 가짜라고 하는 진짜라는 뜻의 ‘한국의 위조품’”이라고 말했다. 이 불상은 이병각 사후에 그의 외동딸에게 넘겨졌다. 외동딸이 소장하고 있던 이 불상은 1983년 우여곡절 끝에 김동현 선생에게 양도되었으며, 김동현 선생은 대가 없이 호암미술관에 기증했다. 내막을 모르는 연구원은 ‘순금의 좌불상은 최근의 작품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하며, 지금도 가짜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닌다. 너무나 실망한 김동현 선생은 만나는 사람마다 휑하니 들어간 눈으로 애원했다. “금불상을 제일 먼저 본 사람이 바로 접니다. 돈이 없어서 그때는 사지 못했는데 대단한 물건입니다. 내가 위증을 하여 가짜가 되었는데 어떻게 진짜가 진짜지, 가짜가 됩니까?” 그 다음날, ‘시대 불명’이라 쓰인 명패가 다시 금은여래좌상 앞에 놓였다. 하지만 그뿐으로 어떤 이슈도 없이 넘어가 버렸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동현 선생은 어느 용기 있는 학자가 나와 이 불상을 제대로 평가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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