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문화도시와 백워드인덕션
유승호 교수
강원대 영상문화학과
흔히들 경영전략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지 않고 쓰는 툴이 스왓(SWOT)분석이다. 약점과 강점 분석을 통해 외부환경에 대응하는 전략이다. 그렇지만 웬만한 사람들은 이런 약점과 강점의 분석이 얼마나 단견인지 잘 안다.
그러나 요즘 우리나라의 도시발전을 보면 이런 타성에 젖은 약점과 강점의 분석에서 벗어나 창조적 발전을 하려는 지역들이 있어 흐뭇하게 한다. 얼마 전 포천을 갔다. 포천하면 막걸리와 이동갈비, 그리고 군부대를 떠올리던 사람들에게 포천의 채석장은 의외였다.
70년대 돌을 캐던 거대한 석산의 깨진 ‘흉물덩어리’가 멋진 관광지로 변화되어 있었다. 지역주민들에겐 지역의 이미지를 버린다고 제발 없애주었으면 하던 지역 최대의 ‘약점’ 채석장이 자연누수로 형성된 호수와 잘 어울리면서 멋진 장관을 펼치고 있었다.
한국에 이런 것이 하나쯤 있는 것은 정말 괜찮다. 빗발이 날리는 평일에 갔었는데도 몇몇 아베크족들이 즐겁게 채석산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데 여념이 없었다. 포천시는 이런 채석장의 잠재성을 지역발전의 계기로 삼으려고 많은 계획들을 짜는 듯했다.
수십년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없앨 수 있을까 하던 고민이 정반대의 고민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군산도 비슷하다. 군산이나 군산 항구 쪽을 가본 사람들이라면 늘 느끼던 것이지만 이렇게 수십년을 변하지 않는 낙후된 지역이 있던가하던 말들이 요즘 군산을 들렀다 오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야 거기서 옛날 영화 찍으면 끝내주겠던데...” 그런데 공교롭게도 군산시가 그런 예전의 풍취를 지니고 있는 지역을 허물지 않고 보존하며 새로운 산업시대의 유산으로 삼겠다고 한다. 군산이 아닌 다른 어느 지역에서도 맛볼 수 없는 1930년대부터의 유산…. 군산은 변한 것이 없건만 사람들의 눈은 10년 만에 정반대의 시각을 갖게 되었다.
상황이 변함에 따라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지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사회과학의 주요이론중 하나인 게임이론에서는 백워드인덕션이라고 한다.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가며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한 후 현재의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는 시간 역순의 사고방식이다.
채석장이, 산업시대의 건물이 미래의 언젠가 희소자원이 되어 적절히 활용될 수 있다는 확장된 사고가 기존의 ‘흉물’을 ‘유물’로 탈바꿈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이 애초에 의도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얼마 전 전남 신안을 다녀오셨다고 한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풍광을 자랑하는 신안이었지만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고 나니 많이 변했다는 것이다. 의외로 좋은 쪽보다는 부작용 쪽으로 말이다. 이유인 즉 관광객들이 다리가 있으니 숙박도 하지 않고 자동차로 쭉~ 겉핥기로 보고 그냥 가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는 사람들은 늘었지만 오히려 관광수입은 많이 줄었다고 한다. 지역주민의 염원이었던, 지역발전의 최대의 약점이었던 고립을 없애준 그 ‘다리’가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실 사람들은 그 멋진 신안의 풍광과 함께 ‘섬’이라는 곳의 아우라를 느끼고 싶어 신안에 간다.
그런데 세상과 분리되어 휴식을 취하는 곳으로서의 ‘섬’은 사라져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신안에서 섬의 풍광을 느끼고 싶어 방문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아니다. 배를 타고 섬에 내리고 그리고 세상과 단절된 나를 안고 신안의 하늘을 보며 잠들고…다시 깨어 신안을 하나하나 훑어보고 배를 타고 육지로 돌아오는 나.
이제 신안은 ‘개발’이라는 모토 때문에 섬의 체험이 아닌 한나절 관광지로 인식될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들이 스스로 갖고 있던 섬의 거대한 아우라를 관광객들을 묶어두기 위해 새로운 체험프로그램으로 대체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지역의 문화도시 발전에 있어 흔하고 단순한 SWOT의 시각과 몇 수 깊은 사고를 요구하는 백워드인덕션의 차이가 혹시 이런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가져오지는 않았을까.
지역발전에 있어서도 근본적인 시각을 형성하는 철학은 늘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