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연속강연 원문 기고
“한국인에겐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는 유전자 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겸 이화여대 명예 석좌교수는 “한국인에게는 늘 불행을 행복으로 만드는 역사적, 문화적인 특별한 DNA 유전자가 있었다”며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이고 창조적으로 전환시킨 국민의 슬기가 60년 동안 우리에게 이런 나라를 만들어줬다”고 역설했다.
이 교수는 ‘문명사적으로 본 한국의 이상’이라는 주제로 열띤 강연에 나섰다.
이 교수는 “어제란 말도, 오늘이라 말도 순수 우리 말인데 왜 내일이란 말은 한자인가. 내일을 잃어버린 민족이 아닌가, 그래서 이를 한탄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조금 나이가 들고 한국의 역사를 살피다가 문득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운을 뗐다.
이 교수는 “내일은 한자 말이지만, 모레, 글피는 우리나라말 아닌가. 이 세상에 그글피란 말을 가진 민족이 어디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내일은 없지만, 모레를 향해 꾸준히 일하는 사람에겐 글리, 그글피가 열리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만신창이의 불행한 역사가 연속이었지만 그글피(먼 미래)를 바라보며 온 지난 60년은 자랑스러운 역사였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만큼 환경을 존중하는 나라는 없다”고 전제한 뒤 “오합혜라 해서 짚신을 느슨하게 삼아 애벌레 같은 작은 벌레들이 밟혀 죽지 않도록 했다”면서 “오늘날 그린 운동을 하는 유럽에서 봄에 알까고 나오는 벌레들이 줄을까봐 구멍난 신발을 신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음식을 먹으면 고시레하며 반드시 던진다. 인간만 먹는 게 아니라 벌레, 개미 모두와 함께 나눠 먹는 것”이라며 “한국인이 환경을 몰라서가 아니라 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88 서울올림픽’을 떠올리며,“우리나라는 절체절명의 낭떠러지에서 엄청난 전환을 이뤄왔다”며 “수십개국 젊은이들의 피가 맺힌 전쟁의 땅에서 불과 30여년 만에 세계 젊은이들의 축제의 장인 올림픽이 열리는 이런 대역전국이 세계 어디에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올림픽 때 소매치기계에서 외국인의 호주머니를 털지 말자고 결의한 적이 있었다. 4.19때는 희생자들을 위한 의연금을 모집하는데 남에게 구걸한 돈을 의연모금함에 넣는 사람도 있었다”면서 “이 나라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교수는 “악인이라는 사람의 피에도 정이 흐른다. 나라가 아무것도 안해주는데 끝까지 지키는 건 잘난 사람, 지식인이 아니라 저런 사람들이다. 지식인이 뭘 했나”고 지적하면서, “60년을 끌고온 원동력은 역경을 창조적으로 돌린 것이라는 확증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새로운 역사에 들어섰음에도 아직도 과거에서 사는 사람이 돼 서는 안될 것”이라며 “지금까지 걷고 뛰어왔다면 이제는 날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기 힘든 때가 왔고 이제 우리도 갈매기 조너선처럼 도약해야 할 때”라며 강연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