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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는 우리 사회 지탱하는 핵심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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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는 우리 사회 지탱하는 핵심가치”
  • 조현수 기자
  • 승인 2008.08.10 1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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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는 우리 사회 지탱하는 핵심가치”
류석춘 연세대 교수
한국 사회를 지탱해온 정신윤리이자 행동윤리인 유교, 그리고 유교의 규범이 축약된 한국의 효(孝). 기적과 시화를 만들어낸 대한민국 60년 역사에서 효는 과연 한국 사회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가?

연세대 류석춘 사회학 교수는 “효가 사회적으로 확산된다면, 양적인 경제성장은 물론이요 질적인 인간됨의 문제까지도 적절히 담보될 수 있을 것”이라며 효가 우리 사회를 지탱해주는 핵심가치임을 강조했다.

‘유교 윤리와 한국 자본주의 정신:효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유교의 종교성과 유교의 가치사상인 효의 사회적 효과에 대해 역설했다.

류 교수는 “제사를 통해 조상을 기억하면서 내 존재를 인식하고 자식을 잘 키워 나를 기억하게 함으로써 나를 영원한 존재로 재생산하려는 게 바로 유교가 갖고 있는 종교성”이라며 “이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바로 효”라고 했다.

그는 이어 “유교에서의 효는 단순한 세속 규범이 아니라 엄숙한 종교적 명령이며, 효의 본질은 부모를 포함한 나의선대를 ‘기억’하고 ‘재현’하는데 있다”고 말하고, 이것이 유교의 종교적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류 교수는 효와 경제의 연결고리를 ‘효의 종교적 제도화’에서 찾는다.

류 교수는 “조선시대의 경우 영원한 가문의 연속성을 위해 제사가 필요했으며, 제사를 격식에 맞추기 위해서는 물질적 여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 성취를 위한 동기부여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근대화 과정에서 제사가 ‘허례허식’이란 비판 속에 빛을 바랬고, 대신 내 존재를 자식을 통해 연장하려는 욕구가 강해지면서 이것이 교육열로 투영됐다는 주장했다.

류 교수는 “제사와 교육에는 돈이 필요하다”고 전제한 뒤 “서양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돈을 번다는 기독교식 자본주의론과 비슷한 방식으로 우리는 지난 60년간 부모·자식을 위해 희생을 치러왔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고도의 양적 성장을 이뤄낸 지금, 효의 의미는 무엇일까.
류 교수는 “현대사회에 유교적 가치를 접합시킬 여지는 충분하다”면서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된 효가 사회적으로 확산된다면 양적 경제성장은 물론 질적인 인간됨까지 적절히 담보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효가 구시대의 주관적 가치가 아니라 살아있는 공공적 가치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류석춘 교수의 강연내용.

유교 윤리와 한국 자본주의 정신: 효(孝)를 중심으로

Ⅰ. 효를 말하며
일찍이 베버 (Weber) 는 종교적 가치의 사회적 효과에 대해 탁월한 분석의 사례를 보여준 바 있다.
사회학의 고전이 된 논의를 통해 베버는 기독교 개신교에 함축된 가치지향이 독특한 자본주의적 노동윤리를 형성시켰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서구 근대 자본주의의 중요한 동력이 되었음을 지적한다.
나아가 그는 이 종교적 가치의 발전론적 효과가 서구 이외의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거나 아니면 체계적으로 차단되었다고 진단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중국을 필두로 한 유교문화권이다. 한국사회 역시 그간 이 굴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 글은 바로 이 베버의 유교 진단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 반론의 계기를 유교의 효에서 찾고자 한다.
효의 사회적 효과, 그 중에서도 특히 경제적 효과를 규명함으로써 전통적 가치의 발전론적 함의를 확인해보려 한다.
혹자에게는 효라는 규범가치를 경제적 효과와 연계시키는 작업이 여전히 낯설어 보일 수 있다.
일견 지극히 가치합리적인 효 덕목과 수단합리성의 총아인 경제가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연계의 타당성은 역설적이게도 서구 유럽에 관한 베버의 논의가 확인해주고 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효를 ‘한국 자본주의 정신’의 중요한 토대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효의 경제적 효과를 밝히기 위해 먼저 효의 사상적 측면을 살핀다.
특히 우리는 효가 유교의 다른 가치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종교적’ 의미와 효과를 가지는 것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효의 종교사상적 측면에 주목하여 효가 죽음과 영원의 문제를 처리하려는 유교 특유의 기제임을 보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효는 ‘선대의 기억과 재현’이라는 독특한 실천을 통해 잠재적이지만 강력한 경제적 동기의 연결고리로 드러난다.

두 번째는 이처럼 효에 수반된 경제적 동기가 현실의 맥락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고찰한다.
구체적으로 효가 가족주의라는 삶의 원리와 어떻게 접합되어 어떠한 기능을 하는지 살핀다.
이 과정에서 효는 ‘발전적’ 재현, ‘계승적’ 재현, ‘집합적’ 재현의 논리적 원천을 제공하며, 결과적으로 강력한 경제적 자극 및 동기의 진원으로 부각될 것이다.

Ⅱ. 효: 죽음을 넘어 영원으로

1. 효 사상의 종교성
주지하다시피 종교는 인간의 존재성을 확인해주는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궁극적인 의식(意識) 기제이다.
물론 인간의 존재성 확인은 종교 이외의 기제를 통해서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의 존재성을 궁극적 실재와의 관계 속에서 영원으로 확장시키는 것은 종교가 유일하다.
영원한 존재성의 확보라는 종교적 요청은 숙명적으로 ‘죽음’의 문제와 대면할 수밖에 없다. 피할 수 없는 생물학적 죽음은 그 자체가 공포일 뿐 아니라 영원한 존재성의 치명적인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존재의 영원성을 보장하려는 종교는 필연적으로 죽음의 해석과 처리를 자신의 하드코어로 할 수밖에 없다. 정확히는 죽음의 해석과 처리로부터 비로소 종교가 성립한다고 할 수 있다.

일찍이 베버가 유교를 종교의 범주에 넣는데 주저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에게 비친 유교는 초월적 절대자의 부재, 세속을 향한 구원 메시지의 부재, 천년왕국의 내세 부재 등 종교 요소의 부재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가 유교를 현세의 질서와 관습에 적응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전형적인 속인(俗人)의 윤리로, 그리고 교양 있는 세속인을 위한 정치적 준칙이나 사회적 예의범절의 거대한 법전 체계로 본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그에게 있어 유교는 죽음을 적절히 처리하여 존재를 영원으로 확장시키는 이른바 하드코어가 빠져 있는 종교이다.
죽음이라는 문턱에서 존재의 영원성이 좌절된 유교인들에게 남아있는 대안이란 현세에 대한 강렬한 집착일 수밖에 없다.
베버가 유교의 특징으로 ‘현세적 적응’을 지적한 시원적 맥락이 바로 여기이다.
문제는 베버 역시 기독교적 맥락에 갇혀 있음으로 해서, 결과적으로 효를 통해 발산되는 유교의 종교성을 포착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종교로서의 유교는 죽음과 영원의 문제를 어떻게 풀고 있는가?
이를 위해서는 논의를 잠시 우회하여 기독교의 경우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기독교가 죽음을 처리하는 방식 그리고 그로부터 존재의 영원성을 담보해내는 방식은 잘 알려져 있다. 기독교는 초월적 절대자의 완전무결한 의지와 역사함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절대자의 의지와 역사함은 명백한 목적으로 지향되어 있다.
영원한 생명의 시공간으로서 천년왕국이 바로 그 목적이다. 물론 이 시공간은 인간의 견지에서 보면 탈역사화된 시공간이다.
구원이라는 통로로 진입하게 되는 천년왕국에서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영원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
천년왕국이야말로 절대자에 의해 태초부터 계획된 인간 존재의 궁극적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천년왕국 프로그램에 입각해 기독교는 현실과 인간의 역사를 상대화한다.
현세는 천년왕국에 이르는 노정에서 볼 때 궁극적 삶이 잠시 유예된 잠정적 과도기에 불과하다.
이 강력한 상대화의 효과가 현실의 끈, 예컨대 전통과 혈연관계를 뛰어넘게 만든다는 베버의 지적은 잘 알려진 바이다.
하지만 이러한 종교적 비전의 정수는 다른 무엇보다 죽음의 극복에 있다. 천년왕국의 구원 메시지에 의해 죽음은 비로소 상대화되고 존재는 죽음을 넘어 영원으로 자신을 확장한다. 기독교의 강력한 종교성은 바로 이 대목에서 극적으로 빛을 발한다.

이제 유교를 보자. 기독교와 달리 유교는 선험적 목적론과 배후의 인격화된 의지를 전제하지 않는다.
대신 유교는 자연과 규범세계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추상적 보편원리가 세계를 구성하고 주재한다고 믿는다.
도(道), 이(理), 태극(太極) 등으로 표현되는 궁극원리는 기본적으로 몰인격적이며,
거기에는 현세를 넘어 특정의 초월 세계를 목적하는 예비된 계획도 없다.
궁극원리는 우주와 자연과 인간에 두루 편재하면서 세계를 구성하는 동시에 세계를 규범화하는 전형으로서 존재한다. 그것은 인간 바깥에 존재하는 초월의 원리인 동시에 인간에게도 품수(稟受)되어 있는 내재적 원리이기도 하다.
인간에게 주어진 이 원리를 본연의 지고지선(至高至善)의 상태로 실현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자연적, 규범적 의무이다.
사실 여기까지만 보면 유교의 도덕형이상학만 드러날 뿐 종교적 측면은 좀처럼 포착되지 않는다.

궁극 원리인 이(理)는 앞서 말했듯이 자연과 우주의 생성, 소멸, 재생성을 주재하는 불멸의 본질을 지닌다.
그렇기에 이(理)의 규정성은 결코 개별 존재의 현세에 국한되지 않으며 영원으로 확장되어 있다.
당연히 존재의 죽음 역시 이(理)의 주재성을 단절시키지 못하며, 오히려 죽음 자체가 이(理)의 자연스러운 발현이며 또한 영원한 이(理)로의 돌아감이다. 따라서 죽음은 반리(反理)가 아니라 합리(合理)로 승화된다.
바로 여기에서 죽음은 비로소 종교적 존재론의 차원에서 상대화된다.
인간의 생물학적 죽음이 그의 존재성을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멸의 궁극 원리에 귀의하게 함으로써 존재성을 영원으로 확장시키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암묵적 조건이 개입한다.
인간이 현세의 실천을 통해 자신을 이(理)의 원리에 합일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조건적 명령이 충족되는 한 죽음은 결코 그의 존재성을 단절시키는 치명적인 계기가 아니다. 오히려 영원한 존재의 시작일 따름이다.
우리는 이로부터 죽음과 존재의 영원성을 처리하는 유교 특유의 종교 논리를 이해할 수 있다.

간략하게 유교의 종교 논리를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추상성과 엘리트주의의 문제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실천적 ‘현실성’의 문제이다.
상기한 바에 따라 죽음을 극복하고 존재성을 영구화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되기 마련이다. 종교적 거장(virtuosi)만이 그렇게 할 수 있을 뿐, 종교적 요구에 대한 대중들의 부응은 최소한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유교의 종교적 진면목은 오히려 실천적 규범 차원에서 보다 잘 드러난다. 유교에서 실천적 원리이자 덕목으로서 오륜이 강조되는 맥락이 바로 여기이다.
오륜은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제시된 종교적 해법의 현실적이고 대중적인 실천론이다. 특히 오륜 중 가장 앞서 나오는 부자유친(父子有親), 이른바 효의 실천은 종교적 해법의 정점이다.
다시한번 그 중에서도 사후(死後)의 효가 그렇다.

유교에서의 효는 단순한 세속 규범이 아니라 엄숙한 종교적 명령이다.
그리고 효의 본질은 부모를 포함한 나의 선대를 ‘기억(remember)’하고 ‘재현(represent)’하는데 있다.
그러면 왜 기억하고 재현해야 하는가?
바로 여기에 죽음의 처리에 대한 유교적 해법의 단서가 있다.
물론 그 해법은 ‘합리’적 귀의(歸依)에 의해 존재론적으로 해소되고 있지만, 현실적이고 대중적인 차원에서도 실천적으로 구현될 필요가 있다.
즉 존재의 영원성이 현실 차원에서 실천적으로 담보되고 또 확인되어야만 한다. 이 요구가 충족될 때 비로소 유교는 종교적 설득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유교는 그러한 종교적 요구의 해법을 기억과 재현에서 찾는다.
즉 선대의 영원한 존재성을 선대에 대한 후대의 기억과 재현을 통해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유교 특유의 ‘조상숭배(ancestor worship)’는 여기에 본질이 있다.
후대가 선대를 기억하고 재현하는 한 존재의 영원성은 객관적으로 확인된다. 역으로 후대의 기억과 재현이 없다면 존재의 영원성은 담보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은 존재의 영원성을 단절하는 행위이며, 결과적으로 유교의 종교적 명령을 거스르는 이단 행위이다.
유교에서 왜 그토록 효가 중요시되고 불효가 지탄받았는지 여기에서 이유를 알 수 있다.

2. 효의 경제적 계기
유교에서 효는 인(仁)의 으뜸가는 실천이다. 부모에게 성의정심(誠意正心)을 다하는 지극한 섬김이 효가 요구하는 내용이다. 효의 실천은 부모의 생전과 사후가 다를 수 없다.
특히 사후의 효는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 본질적이다. 사후의 효가 죽음을 극복하고 존재의 영원성을 확보하는 숭엄한 종교적 기제인 탓이다.
이제 과제는 효에 수반된 경제적 효과를 파악하는 일이다. 우리는 효와 경제의 연결고리를 효의 종교적 ‘제도화’에서 찾고자 한다.
그 근거는 효의 종교성이 결코 형이상학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 현실에 녹아들면서 필연적으로 제도화한다는데 있다.
이 때 제도화의 과정이 물적 기반의 문제, 다시 말해 경제적 차원과 유리될 수 없음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바이다.

역사적 종교는 원리적으로 현실을 상대화하면서도 현실에 직?간접으로 개입한다.
특히 성속(聖俗)의 융합도가 높고, 종교와 정치(현실)가 혼융되어 있는 유교세계에서 그 현실적 규정력은 결코 만만치 않다.
유교는 자신의 종교적 지향을 현실에 강하게 요구하고 반영하였다. 구체적으로 효의 실천을 통해서이다.
중요한 것은 효가 강력한 종교적 ‘당위’인 탓에 효의 실천이 지속적으로 보장되고 또 확인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효의 실천이 구체화, 객관화되어야 했다. 그것도 대내외적 ‘검증’의 차원에서 객관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유교가 왜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의식화(儀式化)를 요구했는지 배경적 맥락을 이해하게 된다.

효의 종교성을 고려할 때 관혼상제는 죽음과 영원성이라는 종교적 하드코어의 처리 절차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거기에는 유교의 종교적 의미가 필연적으로 함축될 수밖에 없다.
우선 ‘관례’는 기억과 재현으로 누대를 이어온 존재성을 다음 세대로 이어줄 새로운 주체의 종교적 승인이다.
‘혼례’는 기억을 이어갈 새로운 주체의 생산에 필요한 생물학적 결합의 종교적 승인이다.
‘상례’는 선대의 물리적 죽음이 수반하는 인간적 슬픔을 극복하고 죽음을 영원으로 승화시키는 종교적 매개과정이다.
‘제례’는 영원으로 승화된 선대의 존재를 주기적으로 환기시킴으로써 후대의 기억과 재현 의무를 확인케 하는 종교적 검증과정이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관혼상제는 효로 대변되는 종교적 요구를 제도적으로 확인하고 검증하는 유교 특유의 의식 절차이다.

문제는 효가 종교적 당위로 요구되는 세계에서 효의 실천이 곧 종교적 시민권(religious citizenship)의 확보와 직결된다는 점이다.
이는 타인의 인정은 물론 스스로의 주관적 확신을 위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점에서 유교사회의 인간에게는 자신의 효행을 객관화하려는 강력한 동기가 제공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관건은 관혼상제로 대변되는 객관화된 효행의 ‘실천비용’이다.
주지하다시피 전통사회의 조건에서 이 비용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고, 상당한 경제적 기반을 필요로 했다.
특히 관례나 혼례, 상례와 같이 일회성 절차가 아니라 평생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제례(제사)의 경제적 비용은 막대하였다.

더구나 유교 예법이 요구하는 사대봉사(四代奉祀)를 고려한다면 제사의 경제적 압박은 결코 작지 않았다.
그렇다고 제사의 의무를 무시하거나 임의로 경감할 수도 없었다.
앞서의 논의가 말해주듯 제례는 사례(四禮) 중에서도 선대의 존재성을 담보하는 가장 핵심적인 종교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실제 전통사회에서 ‘봉제사’의 의무가 그토록 중요시되었던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결국 효행의 객관화는 실상 경제적 기반의 확보와 긴밀하게 연계될 수밖에 없었다.
이로부터 봉제사로 대표되는 효행의 객관화 이면에 만만찮은 경제적 유인이 작용함을 읽어낼 수 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효의 객관화에 수반된 경제적 동기가 구체적인 현실 맥락과 접하면서 결정적으로 강화된다는 점이다.
바로 이 맥락에서 효는 검증을 넘어 ‘경쟁’의 차원으로 전이된다.
곧 기억과 재현은 경쟁의 과정으로 전화한다.
‘누가 선대를 더 잘 기억하는가’,
‘누가 선대를 더 잘 재현하는가’의 화두가 성립하는 것이다.
우리는 조선 후기에 종법적 제례의 강화, 족보와 문집의 간행,
서원과 사우(祠宇)의 건립이 ‘경쟁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기억하고 있다. 다양한 형식이 동원되고 있지만,
이들의 본질은 예외 없이 선대의 기억과 재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확산의 과정이야말로 지금 말하는 경쟁의 맥락을 정확히 반영해준다.

Ⅲ. 효의 경제학

1. 효와 가족주의의 형성
가족주의는 흔히 “가족 집단의 발전과 안위를 개인의 그것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사고나 행위의 경향”, 혹은 “일체의 가치가 가족집단의 유지, 지속, 기능과 관련을 맺어 결정되는 사회의 조직형태 및 행태방식”으로 정의된다.
이 정의에서 개인에 우선하는 가족의 우월한 위상 그리고 여타 집단에 우선하는 가족의 절대적 중요성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런 점에서 일단 가족주의가 가족을 지상의 가치로 하는 하나의 인식 및 행위 원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 가족주의는 사실 한국이나 유교권 만의 현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동서를 막론하고 전통사회 일반에서 가족은 개인에 우선하는 그리고 여타 집단에 우선하는 절대적 실체로 기능하는 경우가 흔하다.
사회가 상대적으로 미분화된 전통시대에 가족은 개인이 의존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자연적 집단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현대 시점에서도 가족주의는 결코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가족중심의 인식 및 행위원리는 지역을 막론하고 어렵지 않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제 3세계의 많은 나라들에서 가족주의는 여전히 중요한 사회적 사실(social fact)로 기능하며, 퍼트남의 논의에서 이탈리아 남부의 사회문화적 지향 역시 가족주의로부터 설명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소위 유교적 가족주의의 종차적(種差的) 정체성 문제를 규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가족 중심의 인식 및 행위원리라는 가족주의 일반의 의미는 공유하되 그것을 형성 및 강화시키는 가치적 기원과 역사적 맥락은 사회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유교적 가족주의가 어떤 기제에 의해 생겨났고, 왜 그토록 중요시되는지 규명함으로써 해소될 수 있는 문제이다.
요컨대 이는 유교적 가족주의 형성과 그 의미의 문제로 귀착된다. 우리는 이 유교적 가족주의(이하 가족주의로 표기) 형성의 단서를 효에서 찾고자 한다.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 잠시 앞 장의 논의로 되돌아가 그 맥락을 이어가 보기로 하자.

앞서 효의 종교적 기능이 죽음의 극복과 존재의 영원성 확보에 집약되어 있음을 보았다.
또한 효의 실천이 기억과 재현의 방식을 취하고 있음도 확인하였다.
이 과정에서 기억과 재현의 주체로 가족이 상정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선대의 분신인 가족들이 선대를 기억하고 재현하려는 것은 거의 생물학적 반응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까지의 종교적 맥락을 잠시 유보한다면 선대의 기억과 재현은 동서고금의 보편적 현상이다.
가령 기독교사회라고 해서 선대를 기억하려는 인지상정이 왜 없겠는가?
그렇지만 기독교사회는 그러한 상정이 주관적 차원을 넘지 않았고 종교적 지향과도 결합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유교사회와는 가족의 의미와 위상이 다르다.
오히려 베버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가족적 기억과 재현의 동기가 기독교 특유의 종교적 프로그램에 의해 상대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자연히 기독교사회에서 가족의 의미는 최소한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유교사회에서는 기억과 재현을 위한 가족의 의미가 주어진 생물학적 차원을 넘어 종교,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된다.
정확히 말해 가족은 죽음을 넘어 존재의 영원성을 보장하려는 종교적 거점이다. 유교의 가족은 선대를 기억하고 재현하기 위한 유교식 교회의 다른 이름이다.

2. 가족주의의 연속과 변화
전통사회에서 기억과 재현은 관혼상제, 족보와 문집, 사우와 서원을 통해 객관화된다.
이 객관적 실천수단이 상당한 물적 기반을 요구하고, 이를 경쟁적으로 충당하기 위해 경제적 동기가 자극된다는 것이 앞선 논의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근대화과정에서 기억과 재현의 전통적 수단들은 사라지거나 약화되어 버렸다.
제사를 제외한 객관적 수단들이 사실상 사라져 버렸고, 제사도 절대적인 종교적 의미를 상당 부분 상실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현대는 기억과 재현의 전통적 형식들을 해체시켜 그 자리를 공백으로 만들어버렸다.
이제 기억과 재현의 수단들은 새로이 갱신되거나 아니면 다른 어떤 형식으로 대체되어야만 했다.
전통적 수단의 폐기가 기억과 재현의 욕구나 의무 자체를 폐기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 변화에 따라 우리는 한국의 근대화과정에서 기억과 재현의 방법이 봉제사와 같은 한정된 형식에서 ‘자식의 삶 자체의 고양’이라는 일반화된 형식으로 갱신 내지 대체되었다고 본다.
예컨대 한국사회의 특이한 현상 가운데 하나인 높은 교육열은 대표적으로 이러한 삶의 고양을 실현하려는 강력한 욕구의 표현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기억과 재현의 의미를 좀 더 깊이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기억’이란 부모의 생전 모습 내지 생전의 삶을 담고 있는 자식의 의식(意識)이다.
그리고 ‘재현’이란 그러한 생전의 삶의 모습을 일정한 형식을 통해 드러내는 실천 활동이다.
양자는 상보적이고 순환적이다. 기억을 통해 재현하고 재현을 통해 기억한다.
하지만 분석적 견지에서 볼 때 현대의 조건으로 인해 위태로워진 것은 기억보다는 재현이다.

지적했듯이 전통적인 재현의 형식들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현이 포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의미의 확장을 통해 재현은 보다 일반화한다.
선대의 분신인 내가 나의 삶 전반을 통해 선대를 드러내고 확장하는 것으로 전이된다.
재현이란 필연적으로 돌아가신 부모에 대한 자식의 대리 실천일 수밖에 없다.
이를 확장하면 재현은 자식이 부모의 삶을 ‘대신 사는’ 과정이기도 하다.
전통사회는 그러한 ‘대신 삶’의 방법이 종교적, 사회적으로 객관화된 사회였고, 현대는 그러한 조건이 무너진 사회이다.
이제 재현은 부모를 대신한다는 포괄적인 의미 아래 자식의 삶 전체를 통해 실천되고 증명되어야만 했다.
이에 현대의 가족주의 역시 기억과 재현의 본질은 유지하되 그 작동의 논리를 갱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3. 기억과 재현의 발전사회학
가족주의 문화가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개인은 결코 독립적이고 절대적이지 않다.
물론 이것은 유교문화의 고유한 인간 규정이기도 하다. 이 규정에 따르면 개인은 가(家)라는 전체, 이른바 통체(統體)를 구성하는 부분자로 존재하지 결코 독립적인 개별자로 존재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개인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특히 지금의 맥락에서 가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될 수 있는 ‘역할의 집합체(totality of roles)’이지 그 자체로서 절대적 의미를 가지는 존재는 아니다.
그렇다면 통체로서의 가에 대한 부분자로서의 나의 의무는 무엇인가?
혹은 가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되는 역할의 집합체가 나라고 할 때 그 역할이란 무엇인가? 여기에서 우리는 새삼 기억과 재현의 의미를 확인하게 된다.
그것은 부분자로서 나에게 주어진 당위적 역할이자 의무이다.

가족주의가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끈 중요한 동력이었음은 부인하기 어렵거니와 그 가족주의의 기반에는 상기한 당위적 의무 관념이 깔려 있었다.
선대의 기억에 근거하여 선대를 재현하려는 노력이 강력한 경제적 동기와 함께 궁극적으로 가족적 자원동원을 가능하게 하였다.
우리는 이를 ‘재현의 경제 효과’로 이해하는바 거기에는 다음의 세 가지 계기가 특히 주효하였다.

첫째는 선대를 기준으로 한 ‘발전적(developmental) 재현’의 압력이다.
현대의 조건은 재현의 전통적 수단들을 폐기시켰고, 그 결과 재현은 이제 ‘대신 삶’의 논리에 따라 자식의 삶 전체를 통해 증명되어야만 했다.
이는 재현의 형식이 일반화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재현의 기준이 모호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연 부모를 이은 나의 삶이 선대를 잘 기억하고 있는 것인가, 과연 선대를 제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인가?
이 의문은 결코 가볍지 않는 불안을 동반한다. 부분자로서 나의 당위적 의무 관념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불안을 해소할 객관적인 기준 역시 전통사회와는 달리 모호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온 기준은 일단 선대보다 나아진 삶, 선대보다 발전된 삶이었다.
선대보다 나아지거나 최소한 선대의 수준을 유지해야지 그렇지 않을 경우 이를 제대로 된 재현으로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최소한 발전적 재현을 통해서 그나마 의무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반면 퇴보하는 삶은 대신 삶이라는 견지에서 볼 때 재현의 실패이자 의무의 방기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곧 효의 실패였다.

두 번째는 ‘계승적(successive) 재현’의 압력이다.
상기의 발전적 재현의 논리는 결코 당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기억과 재현은 누대에 걸쳐 지속되어야 하는 당위적 실천이며, 그래야만 비로소 선대의 존재성이 확인될 수 있다.
개인은 면면히 이어져온 가통의 일부분으로서 선대를 기억하고 재현해야 할 뿐 아니라 그러한 기억과 재현이 후대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 책임을 지고 있다.
모든 개인은 그러한 이어짐의 매개 고리이다.
여기서 후손, 곧 자식의 의미가 중요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자식은 단순히 나만을 기억하고 재현하는 존재가 아니라 나에게까지 이어져온 선대 모두를 나를 대신하여 기억하고 재현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자식의 생산과 양육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이며, 그는 나만의 자식이 아니라 선대 모두의 자식인 것이다.

여기서 자식은 나에게 두 가지 의미로 다가온다.
하나는 나의 재현의 ‘수단’이라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나를 이은 새로운 재현의 ‘주체’라는 의미이다.
전자의 견지에서 보면, 내가 자식을 입신양명시키는 것 자체가 나에게 맡겨진 재현 의무의 훌륭한 실천 방법이 된다. 비록 내가 매개가 되고 있지만, 자식의 입신양명 역시 선대의 발전적 재현이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반면 후자의 견지에서 보면, 자식은 현재 내가 맡고 있는 재현의 의무를 나를 대신해서 이어갈 새로운 주체이다. 자식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선대를 더욱 발전적으로 재현해야 할 당위적 의무의 담당자이다.
자식은 나에게 이 두 가지 의미의 존재이다.

중요한 것은 두 가지 의미의 충족이 모두 경제적 기반에 의해 결정적으로 좌우된다는 점이다.
우선 자식을 입신양명시키기 위해서는 경제적 기반이 필요하며, 자식이 나를 이어 충실히 선대를 재현하기 위해서도 경제적 기반이 필요하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나의 사후에 자식이 나를 포함하여 선대를 제대로 재현할 수 있도록 하는 물적 기반의 마련을 요구한다.
물론 이는 일차적으로 당사자인 자식에게 맡겨진 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에 앞서 가통의 계승을 단절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자식의 조건을 마련해 주는 것은 나에게도 할애된 중대한 책임이다.
이 점에서 재현의 의무는 선대를 기준한 발전적 압력 뿐 아니라 후대를 기준으로 한 계승적 압력으로도 나타난다.

한국사회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조금도 식지 않은 열기를 꼽으라면 아마도 그것은 교육을 위주로 한 자식에의 막대한 투자일 것이다.
이 보편적 열기 가운데서 가족주의적 재현의 동기를 읽어내는 것은 지금의 맥락에서 그리 어렵지 않다.
자식에의 투자는 다름 아닌 재현의 연속성을 보장하려는 보험행위이다.
여기에서 경제적 기반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확인된다. 결국 계승적 재현의 압력이 앞서 본 발전 압력과 더불어 강력한 경제적 동기화의 원천이 됨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지난 경제성장이 이러한 경제적 자극과 무관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재현의 경제적 효과를 말해주는 마지막 계기는 ‘집합적(collective) 재현’의 압력이다.
정확히 말해 선대를 재현하는 주체는 집합적으로 존재한다.
선대의 후손은 나만이 아니라 선대의 기억을 공유하는 이들, 곧 나의 형제자매 모두이기 때문이다. 그간 한국사회가 유난히 많은 자식을 선호한 것은 그것이 그만큼 기억과 재현의 가능성을 높여주었기 때문이다.
집합적 재현이란 선대의 재현이 나만의 재현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재현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는 재현의 의무가 후손으로 이어지는 종적 차원 뿐 아니라 형제자매로 연결되는 횡적 차원에 동시에 걸쳐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일단은 개별 형제자매가 각기 부모를 발전적으로, 또 계승적으로 재현해야 하지만, 그것은 전제적으로 볼 때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집합성을 가진다.

재현의 집합성에는 중요한 함의가 들어 있다.
그 함의란 곧 재현에 대한 책임의 공유이다.
선대를 재현하는 것은 내 삶의 발전으로만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형제자매) 삶의 발전으로 증명되어야 하며, 모두가 이에 책임을 나눠가진다. 이로부터 두 가지 효과가 발생한다.
첫째는 재현의 책임이 공유됨으로 해서 형제자매 상호간에 발전을 촉구하는 암묵적 압력이 작용한다는 점이다.
있을 수 있는 개인적 재현 실패가 집합적 재현에 누가 된다는 점에서 이 압력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두 번째는 마찬가지로 책임이 공유됨으로 인해 형제자매 상호간에 부조가 활성화된다는 점이다.

Ⅳ. 맺음말: ‘효’ 경제의 발전적 함의

한국의 근대화는 범국민적 차원에서 발휘된 높은 경제적 동기와 헌신적 노동 투입이 있었기에 가능하였고, 이것이야말로 경제성장을 이끈 결정적인 동력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적 동기와 투입을 자본주의 일반에서 발견되는 평범한 한 사례로 보기에는 분명 석연찮은 면이 없지 않다.
경제 성장의 욕구는 사실상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고, 더구나 제 3세계의 많은 국가들도 우리만큼 아니 우리 이상으로 경제성장에 목말라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달랐고 한국의 자본주의는 예외적인 경제적 성취를 이루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교문화와 가족주의가 한국 자본주의의 긍정적 배경의 하나로 지목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문제는 유교의 어떤 면이, 또 가족주의의 어떤 기제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냐는 것이다.
여기에서 효의 의미가 드러난다.
종교적 에토스로서의 효가 선대의 기억과 재현의 의무감을 한국인 일반에게 내면화시켰고, 이것이 가족주의적 실천을 통해 경제적 동력으로 전화된 것이다.
이 점에서 한국의 자본주의는 유교의 효라는 의미의 원천으로부터 헌신적 노동의 에토스를 제공받아온 현대 자본주의의 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효에 내재된 종교적 지향이야말로 한국적 노동윤리의 숨겨진 기원이면서 동시에 한국 특유의 자본주의 정신이었다.
효의 경제학은 60년대 이후 한국의 발전국가 전략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6, 70년대 경제개발은 산업기반 자체가 열악했던 당시 상황에서 인적 자원동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였다.
이 과정에서 양질의 헌신적인 노동이 제공된 데에는 가족주의적 재현이 결정적이었다. 절대 빈곤의 상황에서 재현은 곧 경제적 재현이었고, 이는 거시적 견지에서 볼 때 대규모 노동시장의 형성에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것도 헌신도 높은 양질의 노동시장을 형성하였다. 경제적 재현의 당위성 속에서 헌신적 노동은 재현의 핵심적인 실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6, 70년대 유행한 소위 ‘잘 살아보세’의 구호가 그토록 열광적으로 화답된 것은 발전적 재현과 결코 무관하다고 보기 힘들다.
한국의 발전국가는 효 경제에 의존하여 가족적 동원을 이끌었고, 이를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운용함으로써 성공적인 경제적 성취를 이루었다.
이 과정에서 특히 ‘집합적 재현’의 압력은 주목할 만한 의미를 지녔다.
국가는 집합적 재현의 요구에서 비롯된 가족적 상호부조에 힘입어 자신이 담당해야 할 사회적 복지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대신 절감된 비용을 경제적 인프라의 구축에 전용하였다.
이것이 결과적으로 거시적 경제성장을 배가시킨 중요한 토대가 되었음은 우리 모두가 주지하는 바이다.

이상 효의 거시경제적 효과를 간략히 짚어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새삼 효의 본질이 선대에 대한 책임의식임을 강조하고 싶다. 이는 향후의 전망과 관련하여 중대한 함의를 지닌다.
나는 선대로부터 이어져 나왔고 또 그를 대신 살아가고 있다.
이음을 받은 존재, 대신 사는 존재가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선대에게 빚을 지고 책임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 점에서 선대는 나에게 일종의 삶의 ‘감시자’로서 다가온다. 다소 과장이 허락된다면 선대는 내 삶의 심판자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의 지난 경제성장은 이러한 감시자로서의 선대에 대한 부채의식 내지 책임의식의 소산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부채를 벗고 책임을 다하는 과정이 곧 재현의 과정이었고, 발전적 재현의 과정에서 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가 놀라운 경제성장을 경험하였다.
이러한 효 경제는 선대에 대한 재현의 요구와 거기에 대한 자식의 공감이 있는 한 향후에도 기본적으로 유효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다만 효에 대한 종교적 몰입의 정도에 따라 재현의 강도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아마 사회문화 전반의 합리화를 고려하면 지난 반세기만큼의 폭발적인 재현은 쉽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건대 지난 반세기 동안 효 경제의 효과는 주로 양적 성장에 집중되어 있었다.
절대 빈곤 속에서 재현의 첫째가는 기준은 경제적 고양이었고, 그것도 양적인 차원의 성장이었다.
아마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선택의 여지없는 경제적 재현의 당위성 앞에서 의미나 인간화의 문제 등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절대 빈곤 속에서 너나없이 재현의 의무와 부채의식을 해소하기 위해 제일 먼저 경제적 기준, 특히 양적 기준에 매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효 경제가 오늘날의 풍요를 가져다 준 것은 사실이나 문제는 그 풍요만큼의 의미와 행복이 우리에게 있는가라는 회의 섞인 되물음이다.
이는 선대의 기억과 재현이라는 효 본연의 의미를 생각할 때 중대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천리에 합일하는 실천이 효일진대, 그 효의 실천이 질적인 의미를 담보하지 못하는 역설이 생긴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선대를 더욱 철저한 내 삶의 감시자로 받아들일 필요를 느낀다.
그것도 경제적, 양적 재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비경제적이고 질적인 재현까지를 두루 포괄하는 감시자로서 말이다.
이는 결국 선대를 내 삶의 ‘포괄적 준거’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나아가 선대가 곧 나의 ‘반성적성찰적 양심(reflexive conscience)’이 됨을 의미한다.
나의 내면 깊숙이 포괄적 준거로서 살아있는 선대, 그리고 그러한 선대를 내 삶의 감시자로 하여 그를 발전적으로 재현하고자 하는 나의 실천, 이것이 진정한 효라고 하겠다.
이러한 의미의 효가 사회적으로 확산된다면, 양적인 경제 성장은 물론이요 질적인 인간됨의 문제까지도 적절히 담보될 수 있지 않을까?
효는 바로 그 실천적 통로이다.
효가 구시대의 주관적 가치가 아니라 살아있는 공공적 가치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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