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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 전체 경남 유적지 보존지역 지정 연화사(蓮華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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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 전체 경남 유적지 보존지역 지정 연화사(蓮華寺)
  • 조유식취재본부장
  • 승인 2014.02.13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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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일번지 동상동 한복판에 불법전승 포교당

허황후 중궁터에 호계사 지어 가락국 안위 기도
조선시대 객사 후원지로 함허정, 연자루 존재
화재로 소실된 도량 부모은공 위해 중창 헌사 

   
 
  ▲ 김해부내지도.  
 

경내 전체가 경상남도기념물 제267호로 지정된 김해 연화사(蓮華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범어사 포교당이자 도심 속의 전통사찰로 유명하다.

이곳은 역사적으로 볼 때 가락국을 창건한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후가 살았던 곳(중궁터)으로 보여진다고 전해진다.

가락국 당시 세워진 가람들이 거의 모두 신어산(은하사, 영구암), 분성산(성조암, 해은사), 불모산(장유사), 임호산(흥부암), 무척산(모은암, 백운암) 등 산 속에 지어져 있으나 연화사(그 옛날 호계사)만이 유일하게 민가 한가운데 자리하여 대중교화와 기도도량 역할을 하고 있다.

시간여행을 떠나 머나먼 이국땅 인도 아유타국에서 오빠 장유화상 보옥선사와 함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온 나이 열 여섯의 공주 허황후는 이곳에 호계사를 짓고 가락국에 남방불교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 흔적으로 대웅전옆에 세워진 인도양식의 7층석탑과 허황후릉으로 옮겨져 있는 파사석탑 그리고 경내에 있는 가락고도궁허(駕洛古都宮墟)라 새겨진 비석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러한 가야시대의 역사적인 흔적과 함께 연연히 내려오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국교가 불교에서 유교로 전교되면서 중앙의 연락처 담당역할을 하던 도호부의 지방관아 부속 건물인 객사 후원지로 변형되어 중앙의 관료가 내려왔을 때 업무를 보고 난후 연회를 즐기며 머무르는 숙소로 한때 사용되기도 했다.

조선후기 180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김해부내지도를 보면 이 자리에는 옛 호계사 절터를 차지한 객사 별장인 함허정이라는 정자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초가집인 분성대와 정면 앞에는 진주의 촉석루, 밀양의 영남루와 더불어 남도의 대표적인 누각인 연자루라는 누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김해의 진산 분성산에서 흘러 내려온 호계천(虎溪川)의 냇물이 김해읍성 동쪽 수문을 통해 절 내부로 흘러 들어와 함허정 연못을 통과하여 연자루 옆 내천을 지나오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맑고 아름다운 호계천은 지금은 도시개발로 인해 복개돼 도로로 사용되고 있어 서울의 청계천처럼 하루 빨리 옛 모습을 찾아 시민의 목마름을 채워주는 오아시스 역할을 해줄 날을 기대해 본다.

   
 
  ▲ 호계천에서 내려온 맑은 물속에 비친 연화사 전경.  
 

일제 강점기에 접어 들어 민족문화말살정책에 따라 함허정과 연자루는 소리없이 사라지고 빈터만 남아 있었다. 그후 함허정 터에 이동은 선사가 포교당을 지어 범어사 말사인 분성산 해은사의 김해불교포교당 연화사로 사용되어 왔다.

주지 강일석 스님 이후 부산 범어사에서 포교당을 인수하여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 그래서 아직도 지역의 어른들께 물어보면 연화사라는 사찰명보다는 오히려 김해포교당이란 이름이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지금의 연화사는 1970년 11월 15일 대형화재로 소실된 것을 1972년 김해불교신도회(당시 회장 배석현)의 발원으로 선모친의 유원을 받아들여 김한수 한일합섬 회장과 김택수 전 대한체육회장 형제가 1975년 절을 중창하여 김해지역의 불교번창을 위해 환원했다.

절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에 대웅전이 보인다. 남쪽방향 저멀리 낙동강 하구와 김해바다를 바라보고 네모난 석축 연못 안에 기둥을 세워 층이중구조로 만들어 놓아 마치 맑디 맑은 잔잔한 호수위에 대형 연화가 만발하여 하늘 높이 날아가는 모양새다. 연못 물 속 한가운데 계시는 부처님을 뵈려면 어떻게 가야하지!

   
 
  ▲ 삼존불.  
 

삼존불상, 김왕칠불당화, 장유화상신중당화가 현존하는 대웅전 법당으로 갈려면 반드시 돌다리를 건너고 돌계단을 올라가야만 한다. 그 옛날 2000년 전 가락국에 부처님 불법을 전하기 위해 모진 풍파를 이겨내기 위해 파사돌을 싣고 바다를 건너와 이곳에 도착한 허황후는 부모형제가 살고 있는 고향 아유타가 그리워 연못을 형성하고 가운데 섬을 만들어 그 위에 호계사를 지어 밤낮으로 기도를 올렸다.

한편 김해시에 따르면 가야사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주위를 발굴하던 중 가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청색과 백색의 오리모양토기, 호계사 및 함허정의 석렬과 기단석축, 호상집선문과 명문이 새긴 기와조각, 15세기~19세기에 해당하는 분청사기, 석판 6기, 석불상 2기가 발견되어 남아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절에는 구구절절 많은사연이 있는 유적과 유물이 상당하다. 연화사 뒤쪽에는 깨진 미륵불상이 하나 있다. 한국도로공사가 1972년 남해안고속도로를 건설할 당시 김해시 불암동 양정골과 김해시 대동면 선암부락 사이에 있던 부처님 불상을 공사도중 무지의 발로로 산산조각을 내 우리 선조의 손길과 혼이 담긴 문화유산을 파괴한 잔재를 김해불교신도회의 배석현 거사가 연화사 경내로 옮겼다.

지금도 깨진 7조각으로 끼워 맞춰져 어렴풋하게 형태를 갖추어져 있어 참배하는 불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미륵부처님은 미물인 우리 중생들을 향하여 아름다운 미소를 환하게 짓고 있다.

   
 
  ▲ 김왕칠불당화.  
 

또한 경내를 한바퀴 돌다보면 추사 김정희가 중국서 가져와 봉안했다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인도남방식 7층 석탑, 연화사의 창건에 얽힌 역사를 서술한 사적비,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연자루 누각의 기둥 주춧돌 및 연자루 좁은 출입문, 신도비, 가락고도궁허비(분성대) 등 많은 존귀한 역사적 흔적이 남아 있어 금방이라도 수많은 스토리를 내뿜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편 연화사 주위에는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가 많이 있다. 가까이에는 담하나 넘어 옛 연자루터에 맛있고 저렴한 칼국수 식당들이 있고, 바로 뒤편에는 얼마 전 복원한 김해읍성의 북문 공진문이 있고, 동상시장 안에는 임진왜란 당시 식수를 제공한 유공정 등이 있다.

그리고 조금 걷다보면 시내에는 가락국을 창국한 김수로왕릉을 비롯해 허황후왕릉, 국립김해박물관, 대성동고분박물관, 봉황대유적지, 구지봉고분, 가야의 거리, 해반천, 충의각, 시민의 종, 한옥체험관 등 이름난 관광명소가 많이 있어 한 번쯤은 꼭 구경할 것을 추천한다.

절을 찾아가려면 승용차의 경우 동김해IC를 빠져나와 좌회전 후 김해시청을 지나 김해세무서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500M 정도 직진하다가 동상동사무소를 찾아 주위에 주차하면 된다.
버스나 택시를 타고 동상재래시장을 찾으면 쉽게 도착할 수 있다.

주소 김해시 동상동 호계로 517번길 8 전화☎ 055) 336-3046

<<<연화사의 지나온 역사를 상세히 설명한 사적비 전문을 소개해본다>>>

   
 
  ▲ 연화사 사적비.  
 

♥연화사 사적비♥

 

 

1934년 전 김수로왕은 구지봉 황금알에서 탄생하셔 지금의 봉황대 동쪽 일대에 정궁을 세우시고 이곳을 중궁터로 도읍하셨다.

왕비 책봉은 멀리 서역국에서 도래하니 맞이하라는 몽지를 받으셨다. 지금의 창원군 용원리 부인당 앞바다에 파사석탑을 실은 한척의 배가 불도를 닦은 스님이 신부와 시종 수십명을 거느리고 닿았다.

왕은 친히 귀빈일행을 영접하여 처음으로 성례를 올린 곳이 현 녹산면 지사리 명월사지이며 왕후를 맞아 합환한 곳은 장유면 대청리 불모산 기슭 왕후사지이다.

귀빈은 아유타국(중인도)의 왕자 보옥(장유화상)과 허황옥 공주이시다.

이는 출가하여 불도를 닦아 부왕의 홍법원력을 실천코저 망망대해를 도래하사 가락국에 닿으시니 필경 불법인연과 왕의 숙세인연이 있어 왕후로 모신지라 화상은 출가한 몸이시라 궁전에 동거 못함으로 김해읍 삼방동 신어산에 사찰을 건립하시니 동림사와 서림사(은하사), 영구암, 지장암, 청진암, 영운암, 등을 창건하셨다.

김수로왕은 화상을 국사로 모시고 정사를 논의하시니 나라는 불국토요 백성은 태평무사하였다. 왕은 십왕자와 이왕녀를 두시어 큰아드님을 거등왕으로 책봉하시고 차남과 삼남 왕자는 왕후의 성을 따라 허씨로 명하셨다.

나머지 칠왕자는 외삼촌 보옥선인을 따라 속세인연을 끊고 가야산으로 입산하여 삼년간 수도 하시다가 의령의 수도산(자굴산)과 사천의 와룡산(구룡산)을 거처 지리산에 들어가 운상원을 세우고 좌선하신지 이년 후에 가락국 시조 육십이년 신라 파사왕 이십사년 음8월 십오일 밤에 오묘한 진여를 함께 대오하시어 성불하셨다. 이로 인하여 운상원을 칠불선원 또는 칠불암이라 칭하였다.

칠불의 명호는 1.김왕광불 2.김왕당불 3.김왕상불 4.김왕행불 5.김왕향불 6.김왕성불 7.김왕공불 이시다. 이러한 칠불 탄생지는 천하무비의 성지중 성지인지라 과거 지리산 칠불암에 칠불존영을 모셨으나 여수 순천 반란사건 때 불타 없어지고 칠불의 탄생지인 연화사에 다시 모시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와 현실로 당시의 사찰이나 조각유물들이 가락국 불교를 자랑하고 있다. 김해읍 불암동(선암)에는 자연석에 조각된 불상과 선유대라고 기록된 각자가 있었으나 서기 1973년 3월에 남해안 고속도로의 접안으로 파괴되고 쪼각난 불상은 이곳에 존치되어있다. 또 삼정동 삼구 초선대에는 큰암석에 자비로운 불상이 조각되어 있다.

영구암에서 국사가 행차 하실 때 물고기를 못잡게 방을 붙인 곳이 오늘의 어방동이다. 김해읍 구산동 분산록에도 무언설법의 거룩한 불상이 계신다. 왕후께서 이곳 중궁에 입궐하셔 호계천변에 파사석탑을 봉안하고 호계사를 건립하여 원당으로 모셨다.

오랜 세월에 폐사가 되고 탑은 허태후능전에 원형을 잃은 채 보존되어 있다. 조상을 위하여 성조암을 도해한 은덕을 빌기 위해 만장대 산정에 해은암을 부왕의 은공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밀양삼랑진에 부은암을 생림면 생철리 무척산에 모은암을 김해읍 봉황산(임호산)에 도읍지의 융흥을 위해 흥부암을 진영읍 본산리 자암산에 태자암을 세웠으나 지금은 폐허에 옛 일을 고증하는 불상만이 퇴화된 모습으로 남아있다.

수로왕 기릉시 무척산정에 천지를 결성하고 그 옆에 통천사를 세운 유적이 있다. 장유면 불모산의 장유암은 장유대화상의 열반지이므로 불모산이라 칭한다.

빛나고 전통있는 우리 가락불교 역사가 중고에 야평 미문이나 기후 김해 상동면 감로사가 임진왜란에 소진되고 남은 영각전이 이건되어 함허정으로 되었다가 다시 소실된 후 금이백칠십년전 가경오년에 군민이 양사제로 신건하였다고 상량문에 의해 밝혀졌으며 약 60년전 계룡산인 이동은 선사께서 김해불교포교당 연화사로 고쳐 법전을 봉하사 중흥을 이루던 차 경성 십일월 십오일 기화 소진되니 슬프기 한이 없었다.

우리 김해불교신도회에서는 재건을 위해 고심하다가 한일합섬 사장 김한수 씨의 불연으로 그의 상시조이신 태조 수로왕의 허지에 생전 원하시던 선비주 변무진성 보살님의 독실한 신심과 실천과 유훈에 느낀 지효한 발심으로 김한수, 김택수 두 형제분이 선자모 원당으로 생각하고 만년대계의 자재를 불석코 대시주가 되시니 임자년 십월 이십일 기공 을묘년 사월 이십일 완공하였다.

법당 건물 상하 백육평, 요사 이십이평, 일동 원장일체, 궁허지정리, 일주문을 세우고 법당 내부 장식 삼존불상,김왕칠불당화, 장유화상 신중당화 등 총공사비 일금 오천만원을 시주하여 주시고 대중동참에 대소유연제위께옵서도 일금삼백여만원을 시주하였다.

이러한 인연공덕으로 위로는 영대한 불은을 보답하고 아래로는 무변한 중생을 제도하여 세세생생 영구보존함으로 제불의 혜명을 잇도록 하사이다. 더구나 금년 따라 건국이래 우리 불도들의 숙원이던 석존성탄일 국가공휴일 제정이 실현됨은 우리 교당낙성으로 더부러 가락불교재흥의 조짐이 나타남이라 믿어 어긋남이 없으리라

남무석가모니불
남무가락칠불왕불
남무장유대화상
불기 삼천이년(서기 1975년) 을묘 사월 이십일
대한불교 조계종 김해 연화사 주지 이운성
대한불교 조계종 전국신도회 김해지회 건립

 

   
 
     
 
   
 
  ▲ 돌다리를 건너야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  
 
   
 
  ▲ 연못에 노니는 신어무리.  
 
   
 
  ▲ 대웅전을 법당가는 돌다리와 돌계단.  
 
   
 
  ▲ 연화사 칠층사리탑연혁비.  
 
   
 
  ▲ 가락고도궁허비.  
 
   
 
  ▲ 절 뒤편에 세워진 비석군.  
 
   
 
  ▲ 조각 난 미륵불상의 미소.  
 
   
 
  ▲ 호계천의 냇물이 경내로 흘러 들어오고 있다.  
 
   
 
  ▲ 설법전.  
 
   
 
  ▲ 범어사 불교대학(연화선방).  
 
   
 
  ▲ 연화사 7층 부처님 진신사리탑.  
 
   
 
  ▲ 포교당 신도유공비.  
 
   
 
  ▲ 연자루 주춧돌과 안내석.  
 
   
 
  ▲ 대나무숲과 요사채.  
 
   
 
  ▲ 지금은 사라진 연화루로 가는 좁은 문.  
 

► 주위의 관광지와 먹거리촌

 

   
 
  ▲ 동상동 전통시장.  
 
   
 
  ▲ 동상동시장내 칼국수가(연화루 저리).  
 
   
 
  ▲ 유공정-임진왜란 당시 김해부사 유식이 판 우물.(지금까지 우물물이 솟아나고 있다.)  
 

 

 

   
 
  ▲ 공진문-김해읍성 북문.  
 

 

   
 
  ▲ 허황후릉.  
 
   
 
  ▲ 파사석탑.  
 
   
 
  ▲ 구지봉.  
 
   
 
  ▲ 수로왕릉.  
 
   
 
  ▲ 구지봉에서 바라본 임호산, 대성동고분군, 시민의 종.  
 
   
 
  ▲ 해반천.  
 
   
 
  ▲ 국립김해박물관.  
 
   
 
  ▲ 대성동고분박물관.  
 
   
 
  ▲ 봉황대유적지.  
 
   
 
  ▲ 김해한옥체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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