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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저섬장과 구포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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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저섬장과 구포다리
  • 특별 취재팀
  • 승인 2013.08.26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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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大渚)란 크다란 모래톱을 일컫는 말로 일종의 모래로 이루어진 큰섬이란 뜻이다. 그리하여 대저도(大渚島)라 불렀다고 조선왕조실록지리지에 적고 있다. 1978년 정치적인 문제로 부산시 북구로 편입되기 전까지는 김해군(金海郡) 대저면(大渚面)이었다.

대저(大渚)에 본격적으로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이 1908년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설치하여 자국으로 쌀을 공수하기 위해 낙동강에 제방을 쌓고 대저수문과 녹산수문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후이다.

사람들이 모이면서 인근의 구포와 양산등지에서 배를 타고 ‘대저섬장’에 물건을 싣고와서 이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과 가축, 갈대자리, 빗자루 등 특산물과 거래하게 되어 차츰 규모가 커져 주위에서 ‘섬장’의 역할은 그야말로 위세가 등등하였다.
 

 
   

그후 1933년 3월 김해군 대저면과 부산 동래군 구포면를 잇는 동양 최장의 ‘구포다리‘가 건설되고 1945년 해방을 맞이하면서 삼각주의 질 좋은 쌀과 특산물인 ’대저배‘는 전국적으로 유명하여 대저(大渚)가 교통과 행정의 중심지로 크게 발전하는데 한몪을 하였다.

그러나 한편 김해국제공항이 위치해 고도제한 등에 걸려 오히려 더 이상의 개발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린벨트로 묶여 지붕개량이나 집안수리도 잘못해 재산권마저 제약을 받는 천덕꾸러기 지역으로 둔갑하여 답답한 지역민들의 심장만 타 들어갈 뿐이다.

현재 대저는 1,2동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대저1동의 자연마을은 사덕신덕마을, 사덕상리마을, 사덕신장로마을, 번덕마을, 당리마을, 신촌마을, 동연정마을, 서연정마을, 상리마을, 중촌마을, 중리마을, 하리마을, 평강상리마을, 대리마을, 사리마을, 칠점마을, 평강하리마을, 대저신정마을 등이 속해 있으며 대저2동에는 등구마을, 신소마을, 하리마을, 동덕마을, 용두마을, 본리마을, 상방마을, 덕두본리마을, 동방마을, 금호마을, 본맥도마을, 작지마을, 염막마을, 동협마을, 송백마을, 신노전마을, 신평마을, 입소마을, 설만마을, 정관마을, 도도본리마을, 상납청마을, 월포마을, 순서마을, 군라마을 등이 자연마을을 형성하여 살아가고 있다.

근래에는 낙동강벨트를 중심으로 서부산권 개발계획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어 동부산권에 편중되어 있는 중심상권이전과 개발호재를 내세우며 김해국제공항 주변에서부터 시작하여 명지동, 녹산동을 거쳐 가락동, 다시 대저동으로 순환되는 지역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고 한다.

김해-부산경전철이 두 지자체를 순기능으로 바꾸어 놓듯 역사적으로 김해의 옛땅인 대저가 당연히 김해로 자연스럽게 제자리로 돌아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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