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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칠점산과 신선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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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칠점산과 신선이야기
  • 특별 취재팀
  • 승인 2013.08.26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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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시리즈<김해의 옛땅을 찾아서>

   
 
  멀리 보이는 김해공항 관제탑 저 인근이 칠점산이 있던 자리이다.  
 

역사적으로 김해(金海)라는 지명을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된 시기는 신라시대 문무왕(경덕왕)때 김해소경이란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거의 정설로 믿어 지고 있다.

가야시대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신라에 항복하면서 가락국, 가야국으로 불리웠던 지명이 서서히 사라지고 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김해는 금관군, 금관소경, 김해소경, 김해부, 김해도호부, 김해군, 김해시로 지명이 변하였다.

지금은 부산시 강서구에 편입된 대저1동, 대저2동, 명지동, 강동동, 가락동, 녹산동과 창원시로 편입된 대산면 역시 얼마전까지 김해의 땅이었다. 그러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아시는 바와 같이 이제는 빼앗긴 땅이 되어 버렸다.

1978년에 김해군 대저읍, 명지면, 가락면 일부가 1차로 부산시 북구로 편입되고 1989년 김해군 녹산면, 가락면 나머지가 2차로 부산시 강서구로 편입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김해시는 얼마전 장유가 면단위에서 3개의 동으로 분리되면서 19개 읍면동으로 행정단위가 형성되어 경남도에서 통합창원시를 제외하고는 인구숫자가 제일 많은 대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해시가 인구가 늘고 도시화로 변해가면서 자칫 자신의 과거를 잃고 현실과 미래에만 전력투구하다 보면 머지않아 정신적 피폐화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누가 어떻게 책임질 수 있겠는가!그래서 이번 주부터 ‘칠점산과 신선이야기’를 시작으로 김해의 옛땅을 추억삼아 기획시리즈로 다루어 보고자 한다.혹시 아는가! 김해시민이 똘똘뭉친다면 빼앗긴 보물을 되찾아 올지도...

   
 
  칠점산이 있던 마을의 표지석.  
 

옛김해의 대부분은 바다였다. 칠점산은 지금의 김해공항과 공군부대자리에 있었던 일곱 개의 나지막한 돌봉우리 산이었다. 바다물이 들어오면 멀리서보면 마치 점같이 작게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제강점기때 세계 2차 대전말에 일본군이 일곱개의 산중에서 4개를 없애고 그자리에 수송기활주로로 만들고 그후 비행장 확장공사로 다시 2개의 산을 없애 지금은 겨우 1개가 산인지 모를 정도의 조그마한 규모로 남아 있다.

칠점산과 관련해서 아주 재미난 설화가 전해진다. 가야시대때 일명 참시선인이란 신선이 칠점산에 살았는데 가야국 2대왕인 거등왕이 지금의 김해 초선대자리에서 참시선인을 부르면 조그마한 배에 가야금을 싣고 노를 저어 초선대바위에 도착하여 함께 자주 바둑도 두고 노래하며 즐겁게 놀고 갔다는 전설로 놀랍게도 아직도 왕이 앉은 연화석과 바둑을 둔 기국석이 남아 있다.

지금은 일제강점기때 제방공사로 인해 그 형태를 찾을 수는 없지만 옛칠점산의 주위로 낙동강의 물이 세군데서 모여든다 하여 삼차하(서낙동강 하류)라 불리우며 험한 물줄기를 바로 잡아 비옥한 삼각주를 형성하면서 김해평야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칠점산 앞에는 저녁안개 가로질러
삼차강 나루가엔 푸른 물결 일구나.
이월 봄바람에 김해오는 나그네
강남떠난 제비 다시 찾는 것 같구나.

이 시는 포은 정몽주(1337-1392)선생이 지은 칠점산과 삼차강에 대한 시로 그당시 칠점산의 아름다운 광경을 표현했다고 한다.

비록 지금 칠점산은 거의 우리 눈앞에 사라지고 없지만 이처럼 우리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정신문화속에 영원히 남겨져 있으니 그곳이 김해의 정기가 서린 옛땅이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김해시민의 품속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당연한 희망을 가져본다.

 

   
 
  서낙동강의 삼각지 모습.  
 
   
 
  옛 김해땅 대저 수문.  
 
   
 
  전 안 비행기 활주로가 칠점산의 일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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