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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슈기사>마지막이 될 수 있는 제13회 장유의 날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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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슈기사>마지막이 될 수 있는 제13회 장유의 날 행사
  • 특별취재팀
  • 승인 2013.04.19 1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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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의 날은 김해역사의 날이기도 하기에 영원해야한다

가락국사 장유화상의 호를 딴 장유는 가락국 역사를 품고 있는
명당으로 주민들의 운기를 한곳으로 모을 때 장유는 번창하고
주민은 무사태평 할 것이라고 선인들의 말씀이 전해오고 있다.

   
 
  행운권 추첨에서 LED TV에 당첨된 어린이가 김맹곤 김해시장, 박경백 회장과 기념 촬영.  
 
   
 
  행운권 추첨에 당첨된 주민이 김태호 국회의원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장유의 역사 유래
A.D 48년 가락국 시조인 수로왕(首露王)의 처남 허보옥이 허 황후를 따라 이 나라에 와서 이곳 장유에 절을 세우고 오랫동안 수행하면서 김수로왕과 허 왕비사이에 태어난 7명의 왕자를 출가시켜 수행토록 하여 장유사에서 성불시켰다고 한다.

이처럼 장유화상이 머물며 돌아가지 않다가 입적(장유불반 : 長遊不返)하여 후세에 장유화상(長遊和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금도 장유사에는 장유화상 사리탑이 있으며 유적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장유화상이 머물면서 장유산(지금의 태정산) 부근에 마을이 형성되어 ‘장유촌(長遊村)‘이라는 지명이 생겼고 이곳에 절을 세우고 절 이름을 ’장유사(長遊寺)‘라 하였다. ’유하촌(柳下村)‘은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유지앵소(柳技鶯巢 : 버드나무 가지에 있는 꾀꼬리 집)의 명당자리가 있다하여 불렀다고 전해온다.

고려시대에는 ‘제을미향’, ‘장유촌’, ‘유하촌’의 세 마을로 형성되었고, 조선시대 광해군 8년부터 효종 7년까지 41년 동안(1616~1656)에는 지금의 신문리 용산(옛날 이름은 진골 : 鎭谷) 마을에 ‘신문진(新門鎭)’이 설치되어 경상도의 국방요지가 되었다. 조선중기 여지도서(與地圖書 : 1757~1765)의 김해진 김해도호부(金海鎭金海都護府)에서는 ‘유등야면(柳等也面)’이, 호구총수(戶口總數 : 1789)에서는 유등야면에 말단 행정구역으로 18개 리(里)가 속한다고 처음으로 기록에 등장한다.

지금으로부터 곡 244년 전에 장유에 18개 리가 속할 정도로 장유는 대단한 집성촌이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조선중기 : 유등야면(柳等也面)아래 정조 13년(1789년)의 18개리를 보면[북포(北浦),하손(下孫), 부곡(釜谷), 유등야(柳等也), 내덕(內德), 외덕(外德),거물소(巨勿所), 신문(新門), 건림(件林), 대청(大淸), 제며(濟旀), 상점(上店),사기점(沙器店), 덕정(德亭),적항(赤項), 관동(寬洞), 장유(長遊), 태장(台長)] 등이고, 순조 10년(1810년)에 유하면(柳下面)으로 되었다가 고종 16년(1879년) 다시 유등야면(柳等也面)으로 복원 했다가 고종 22년(1885년)장유면(長有面)이 탄생하게 된다.

그 후에 부산경남공동경마장을 조성하면서 2000년 1월 12일 수가리 ‘가동’ 마을이 부산시 강서구 범방동에 편입되고, 부산시 강서구 범방동 ‘장전’ 마을은 장유면에 편입되어 오늘의 장유면이 되었다.

가구 수와 인구수는 2013년03월 기준으로 43363가구에 132845명의 인구( 남 65998명. 여자 66847명)가 살고 있으며 매달 평균 100여명이 전입해 오고 있다.

장유면은 전국 최대 인구를 가진 대동이었지만 얼마 후면 장유 1.23.동 으로 행정구역이 분리된다.

 

   
 
  우리는 달린다. 장유의 번영과 나의 건강을 위해.  
 

◈장유의 자랑 마지막유학자 이우섭 선생

2007년 7월20일 서거한 영남 기호학파의 마지막 유학자로 불러온 화재(華齋) 이우섭 (李 雨燮 77세)선생의 장례가 김해시 장유에서 16일간의 ‘전통 유림장(儒林葬)’ 치러져 전국적으로 관심을 모았고 전국의 유림과 장유 면민들의 아쉬움도 큰다.

유림장은 유림의 종장이 서거했을 때 전국의 유림들이 뜻을 모아 치르는 장례이다. 화재선생의 유림장 역시 유림과 문하생 후손들이 뜻을 모아 치른 16일간의 유림장의 핵심은 유월장(踰月葬)이었다. 유월장은 큰 선비가 타계했을 때 초상이 난 달의 다음 달에 장례를 치르는 유가의 전통장례 예법에 따라 7월20일에 별세한 화재 선생의 장례가 달을 넘겨 8월4일 발인하는 16일장으로 치러진 것이다.

이날 오전9시에 김해시 장유면 덕정리 월봉서원 (화재의 부친 월헌月軒 이 보림李 普林위패를 모신 서원 )입구에서 발인제를 거행하고 중국 주나라에서 시작하여 조선시대에 우리나라에 도입된 신앙탈의 일종인 방상씨 탈 2개가 선두에서 춤을 추며 혼령이 저승에 이르는 동안 악귀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회유하거나 쫓는 역할을 하며 나아가고 32명의 상여꾼들이 상두꾼 최 덕수(63)김해국악연수원장의 앞소리에 맞추어“ 어호와 어호와 어화넘차~ 어화넘~을 부르고, 울부짖는 상주들이 뒤따르는 가운데 지인과 유림들이 애도의 뜻으로 글을 적은 155개의 만장과 함께 운구 되던 흰 상여는 하촌마을 입구와 월봉서원에서 1.5km떨어져 있는 반룡산 선영아래 화산정사에서 노제를 지냈다.

 

   
 
  장유의 미래ㆍ청소년들의 축제도 화려하게 열려 인기가 대단했다.  
 

장례식에는 전국에서 모인 유림과 문화생, 조객 일반시민등 약1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김해시 장유면 덕정마을에서 태어나 선친인 월헌(月軒)이 보림에게 가학을 전수한 화재(1931년생)는 율곡 이이,사계 김장생, 우암 송시열, 간재 전우,석농 오 진영으로 이어지는 기호학파의 연원을 가진 영남의 대표적 유학자 였다.

추연(秋淵) 권 용현 문하에도 출입하였고 도산서원을 비롯해 전국각지에 유림을 접하면서 학문을 이룬 그는 전통방식에 따라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평생 선비의 삶을 살며 장유고향에서 월봉서원을 지키며 후학들을 양성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유학자였다.

화재선생은 조선중종15대 손으로 경종조 신임사화때 낙남하여 김해 장유 덕정에 세거한 이조참판 소요재 춘흥의 8대손으로 자는 화윤(和潤), 전주이씨 서계령파이다.

고인은 생전에 유림의 법도와 효행을 몸소 실천하였기에 그 정신과 덕을 추모하여 유월장으로 유림장이 치러진 것이다.

◈ 장유의 날을 만든 사람들...
역사의 도시 장유사람들은 이처럼 자랑스러운 장유에 살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 왔으며 즐겁고 행복한 아름다운 장유발전을 위해 헌신해 왔다.

장유의 역사와 맑은 운기를 잘 모르는 외지인들이 신도시 개발과 함께 물밀듯이 찾아들면서 장유의 전통과 인심 역사가 점점 사라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단결력 하나로 화합된 기존 주민들은 자신들의 마을을 찾아오는 새로운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주고 장유 사람이 된 이상 장유에 대해 소상하게 알려주어야 한다는 대단한 뜻을 세우고 시작한 사업이 장유주민들의 화합과 장유발전을 위한 장유의 날 행사였다.

2001년 4월 12일 장유의 날 선포식에 이어 매년 4월에 개최해온 지 어언 13년이 되었다.

매회 행사 때마다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장유 사람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하고 이웃 간 친목도모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해마다 치루지다 시피 한 각종 선거와는 무관하게 독창적이고 고집스럽게 오직 장유 사람들을 위한 사업과 행사를 준비하고 개최하다 보니 주민들의 참여와 반응도 좋았다.

이 같은 아름다운 사회를 위해 장유의 날을 만들고 추진했던 사단법인 장유발전협의회와 장유의 대표 일꾼으로는 초대~2대 조세열, 3대 윤갑철, 4~5대 김재갑, 6대 김상규, 7~8대 박이조, 9대 권영록, 10대 정인용, 11대 탁명곤, 12대 주진록, 13~14대 김영호, 15대 조재관, 16대 조낙일, 17대 김동철, 18대 이점섭 일꾼들과 임원들 그리고 이번 제13회 장유의 날 행사를 준비하고 성황리에 마친 19대 박경백 회장을 비롯한 이점섭 직전회장, 배수한 수석부회장, 김병일 부회장, 배재민 부회장, 안상국 부회장, 최옥희 부회장, 임진환 감사, 최호식 감사, 류성돈 사무국장 등이 헌신적으로 희생을 했다 고 한다.

   
 
  대한독립 만세. 김해시 만세 .장유주민 만세.  
 
   
 
  참석내빈들도 국기를 흔들면서 조국의 독립을 기뻐하고 있다.  
 

◈장유의 날 축제행사장 이모저모

(사)장유발전협의회가 주최하고 장유청년회의소(JC), 장유청년회, 장유신도시연합청년회가 공동주관 했으며 장유 지역유관기관 및 사회단체가 후원한 제13회 행사는 2013년 4월 14일 하루 동안 장유스포츠센터 운동장에서 개최되었다.

행사장을 찾은 축하내빈으로는 김맹곤 김해시장, 김태호 국회의원, 경상남도의회 김성규 건설소방위원장, 명희진 도의원, 김해시의회 김근호 자치행정위원장, 배병돌 시의원, 변상돈 시의원, 김동근 시의원, 이병태 김해서부경찰서 장유지구 대장, 구본열 장유119 안전센터장, 김규성 장유농협 조합장, 김계열 장유면남부노인회 회장, 김상규 장유면북부노인회 회장, 최동률 장유면 이장 협의회 회장, 김동철 장유면 체육회 회장, 박홍구 장유면생활체육회 회장, 박수경 장유면 새마을지도자협의회 회장, 정나미 장유면 새마을 부녀회 회장, 배경희 장유면 새마을 문고회 회장, 신상희 해병대장유면전우회 회장, 이철용 장유면 자율방범대 대장, 전옥자 장유면 여성자율방범대 대장, 정규현 장유면 바르게살기 위원회 회장, 이규정 장유면 청소년 지도위원회 회장, 차판외 장유 적십자봉사회 회장, 임애라 장유면 자원봉사회 회장, 최옥희 장유풍물단 회장, 김병원 장유면 농업경영인회 회장, 김병윤 장유면 농촌지도자 회장, 안상국 장유119안전센터 의용소방대 대장, 송순이 장유 119안전센터 부녀의용소방대 대장, 박병종 장유 라이온스클럽 회장, 백인준 장유 청년회의소 회장, 박만억 장유면 청년회 회장, 이동환 장유 신도시청년회 회장, 한국뉴스포츠협회장유지회 박재현 회장, 정인용 10대 회장, 탁명곤 11대 회장, 주진록 12대 회장, 김영호 13대.14대 회장, 조낙일 16대 회장, 김동철 17대 회장, 허명 고문, 이상웅 고문, 송봉업 고문, 김문자 고문 등등 일일이 다 열거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내빈들이 축하를 하여 장유의 날 위상을 증명해 주기도 했다.

장유의 날은 1919년 4월 12일 독립만세 봉화가 김해고을 내에서 맨 먼저 치솟았던 날을 기념하여 2001년도에 제정되었으며 장유면민의 화합과 정진을 약속하고 장유인의 긍지를 드높여 나아가는 만남과 대화의 장을 목적으로 매년 열리고 있다.

행사 종목으로는 건강달리기, 친선체육대회, 청소년 가요&댄스 배틀 대회 등으로 진행되었으며 친선체육대회는 줄넘기, 제기차기, 훌라후프, 티볼, 플라잉디스크, 전자 다트 등 다양한 행사가 치러졌다.

특히 청소년 가요&댄스 배틀 대회는 장유관내 청소년들의 갈고 닦은 노래실력을 선보여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이번 행사는 7. 1일 장유면이 3개 동으로의 분동을 앞두고 장유면단위로는 마지막으로 개최되는 아주 특별한 “장유의 날” 로서 풍성하고 알찬 행사였다는 것이 주민들의 반응이다.

행사를 준비한 박경배 회장은 기념사를 통해 “새로운 변화 속에 능동적인 조화를 이루면서 밝고 행복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취지로 시작한 '장유의 날' 행사가 올해로 열세 번째를 맞이하게 되었다.” 며 “장유의 날 행사는 우리 고장 선인들의 남다른 자주독립 정신과 불의에 목숨을 걸고 항거하는 참된 용기와 정의감으로 살아온 삶을 되새기고 이러한 정신을 계승발전 시켜 후대에 물려주기 위한 우리들의 다짐의 장으로 매년 개최하고 있다.”고 취지를 설명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오는 7월이면 장유면이 행정체계개편에 따라 3개의 동으로 분리가 됩니다. 100년간 우리들은 한 지붕에서 살았지만 이제는 분가를 해야만 합니다. 아쉽고 혼란스럽지만 더 희망찬 장유의 미래를 위해 차분히 준비하고 마음을 가다듬을 때라고 생각한다.”

“주민 여러분 비록 행정적 관리차원에서 내용적으로는 분리되지만 정서적 동질차원에서는 정신적으로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새로운 구심점을 찾는데 장유발전협의회가 앞장서서 노력할 것이다.” 고 했다.

   
 
  사회자의 폼이 꼭 국회의원 같소잉.  
 

◈장유발전협의회는 어떤 단체인가.

지역의 경제, 사회, 문화 등 지역발전에 관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1976년에 설립하여 지역발전에 관한 사업, 주민복리증진에 관한 사업, 교육문화에 관한 사업, 주민의 중대한 현안문제 해결에 관한 사안을 주요 사업으로 정해 행정기관에 요구사항을 전달하여 관철시키고 또 행정기관의 애로사항을 주민들에게 설득하여 협조를 구하는 이해와 조정의 역할을 담당하는 단체이다.

장유발전협의회는 장유의 날 행사를 통해 우리 고장의 선인들의 남다를 자주독립 정신과 불의에 목숨을 걸고 항거하는 참된 용기와 정의감으로 살아온 삶을 되새기고 이러한 정신을 계승발전 시켜 후대에 물려주기 위한 우리들의 다짐의 장으로 매년 개최하고 있다.

◈장유발전협의회가 장유 주민에게...

7월이면 장유면이 행정체계개편 따라 3개 동으로 분리가 됩니다. 오랫동안 우리들은 한 지붕에서 살았지만 이제는 분가를 해야만 합니다. 아쉽고 혼란스럽지만 더 희망찬 장유의 미래를 위하여 차분히 준비하고 마음을 가다듬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행정적 관리차원에서 내용적으로 분리되지만 정서적 동질차원에서는 정신적으로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기억합시다. 주민 여러분 곁에 항상 장유발전협의가 굳건히 지켜드릴 것입니다. 

◈취재를 마치고

우리나라국민들은 정적인 사람들이다 이웃의 담장 너머로 오가던 바구니에 담긴 호박전 한 조각에 답례로 삶은 고구마 두서너 개를 담아 도로 넘겨주던 그런 인정이 넘치던 이웃사촌이었다.

동내 일이던 마을 일이던 모두가 협동하여 참여하여 그 어떤 일도 척척 해내는 억척 조상님들이기도 했다.

이웃의 아픔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으며 무엇이든지 함께 나누자 했던 것이 우리의 전통 미풍양속이다.

나라가 발전하고 세계 문화가 개방되면서 점차 개인적인 자기 위주의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시점에 장유주민들이 한곳에 모여 부대끼며 소리 지르고 막걸리 한 사발에 정을 나누는 화합된 모습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훌륭한 교훈이 될 것이며 장유의 번영에 밑거름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장유가 3개 동으로 분동된다고 해서 장유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장유의 애향주민의 향취가 달라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고 본다.

장유 면민들의 화합되고 단합된 저력으로 장유의 날을 지속시켜 가락국사 장유화상과 유학파 화재(華齋) 이우섭(李雨燮)선생을 기리고 장유 출신 선인들의 남다를 자주독립 정신과 불의에 목숨을 걸고 항거한 참된 용기와 희생을 자랑하는 축제의 장을 장유사람들이 합심하여 지속적으로 이어주길 주민들이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장유지도자들이 알고 있으리라 믿으며 발길을 돌렸다. 특별취재팀 조현수, 최금연, 우정락 기자

 

   
 
  대한독립만세! 그때를 잊지 말자.  
 
   
 
  행사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도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을 축하하고 있다.  
 
   
 
  천사가 내려와 무대공연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우와~ 이 쌀을 우째 가져가노 119아저씨 배달 좀 해주세요.  
 
   
 
  경품 추첨선물이 너무 푸짐하다.  
 
   
 
  어린이들이 119소방차에 올라 화재 체험을 하고 있다.  
 
   
 
  각종 시 상품들도 푸짐하다.  
 
   
 
  우와~ 홈런이다 저 방망이에 한방 맞은면 도둑놈들 죽겠다.  
 
   
 
  각 마을 단위로 마련된 부스는 먹거리가 가득 하다보니 주민들이 붐볐다.  
 
   
 
  천하장사는 역시 인기 짱. 이만기 장사와 장유 대표 미래장사.  
 
   
 
  여기 내빈들은 태극기 흔들는 박자가 전혀 맞지 않습니다요.  
 
   
 
  다양한 가면으로 분장한 출연진들이 멋진 공연으로 주민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특별 출연한 장유의 미인들이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유의 미래 우리가 책임진다. 아자!  
 
   
 
  회장님 감사합니다. 여보 나 상받았다.  
 
   
 
  각종 수상자들에게 시상을 하고 있는 박경백 회장.  
 
   
 
  우와~ 우리 딸 너무 잘한다. 세계가 돈다.  
 
   
 
  엄마, 공주도 잘 넘재. 엄마도 한번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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