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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등 기업 삼성그룹을 만든 氣가 서려 있는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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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등 기업 삼성그룹을 만든 氣가 서려 있는 이곳에
  • 조유식 취재본부장
  • 승인 2013.03.05 0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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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수천 명이 다녀가는 대한민국의 명소가 되고 있다.

호암(湖巖) 가문이 중교리에 터를 잡은 것은 지금부터 510여 년 전 연산군 시대에 16대조가 낙향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생가는 고 이병철 회장의 조부인 문산 이홍석 옹이 지었다고 한다.

안채 지붕마루에 수평으로 걸린 종도리 하단부에 "辛亥年(1851)癸巳月辛卯日乙未時立柱上樑"란 상량문은 생가 복원 시 본채가 지어진 연대를 남기기 위해 옮겨 놓았다고 한다. 이를 통해 1851년부터 집을 짓고 살았음을 알 수 있다.

   
 
  호암 선생이 어린시절을 보냈던 안채 전경.  
 

이병철 회장의 생가는 안채, 사랑채, 대문채, 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안채 우측 산 밑에 대복바위가 있다.

이병철 회장의 생가에서 처음 정미소 사업을 시작할 무렵 사용했던 집기들과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1910년 2월 12일 의령군 정곡면에서 태어난 고 이병철 회장은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한 이후 1987년 사망 때까지 48년간 삼성그룹을 경영하면서 세계적인 기업의 근간을 닦았다.

이병철 회장은 1910년 2월12일 경남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서 태어나서 1987년 11월 19일 78세의 고령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생애는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변화가 극심한 시대였으며 그의 생애 동안 거의 10년마다 대 사건들이 일어났다.

 

   
 
  안채 우측의 광(창고)과 마당의 우물. 이곳에는 사랑채 앞과 안채 앞동 우물이 있다.  
 

호암은 한일합방의 1910년에 태어나서 1919년 3.1운동, 30년의 만주사변, 37년의 중일전쟁과 42년 태평양전쟁, 45년의 8.15해방, 50년의 6.25사변, 60년의 4.19와 61년의 5.16혁명, 79년의 10.26사건 등을 직접 목격했다.

이와 같이 격동하는 사회 속에서 그는 일생을 살아온 것이다. 호암은 지수보통학교 서울의 수송공립보통학교, 중동중학교 일본의 와세다대학에서 수학을 하였으나 모두 중퇴하고 말았다. 호암이 일생동안 목격한 대사건들은 이병철로 하여금 미래를 투시하는 선견지명을 갖게 한 것 같다.

의령군은 지난 2010년을 ‘호암 생가 방문의 해’로 선포하고 호암의 경영철학과 사업보국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전국적으로 기업인과 학생, 일반인을 대상으로 호암 생가 알리기 운동을 벌여 왔다.

이러한 의령군의 노력으로 이병철 회장의 생가는 하루 수천 명이 다녀갈 정도로 의령 9경중에 가장 인기 있는 명소가 되고 있다.

전국에서 명당의 기(氣)와 세계적인 부자의 정기를 받고 싶은 사람들이 이병철 회장의 생가를 찾고 있다.

 

   
 
  호암 선생이 탄생하고 기거했던 안채 전경.  
 

하지만 이곳은 생가 말고는 구경거리가 없다. 구경거리는 고사하고 삼성을 알리는 시설조차 없었다.

기자가 태어난 곳도 이곳 이병철 회장의 생가 이웃이지만 이 마을은 6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허물어진 돌담길과 무너져 내린 빈집들이 마을 곳곳에 흉물처럼 방치돼 있기도 했다.

이곳에는 새마을운동도 안 했나 할 정도로 마을이 낙후돼 있었다.

삼성그룹은 세계적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정작 의령에는 기업도, 학교도, 기념관, 홍보관도 하나 조성되지 않았다. 호암 생가만 남아 있지 삼성의 흔적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이병철 회장이 생전에 인재 제일의 원칙을 강조했으나 고향에는 전문기술대학조차 없다.

럭키금성(LG)의 진주 연암공대 설립과는 너무나 비교되는 것이다.

2010년 이병철 회장 탄생 100주년을 맞아 탄생지인 의령군이 삼성에 적지 않은 홀대를 받으면서 충의의 고장 자존심을 크게 상하게 하고 있다는 지적도 일었다.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인데도 의령에서는 삼성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의령 정곡면 생가에서 있은 호암 탄생 기념행사에도 삼성테크윈과 중공업 인사 몇몇만 참석한 채 호암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주관으로 탄신 고유제와 기념식 등 행사를 가졌다. 삼성가의 인물 없이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를 생색만 낸 채 마친 것이다.

의령군 관계자는 “이건희 전 회장은 선친의 고향인 의령을 잘 찾아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만큼 선친의 탄생지에 대해 큰 관심조차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의령군민들은 “삼성이 의령에 한 것이 뭐 있느냐”면서 “탄생 100주년 기념일에도 불구, 선친의 생가에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무슨 큰 기대를 하겠느냐”고 말했다.

무언가는 모르지만 이병철 회장이 태어나 살았던 고향에 대해 섭섭함이 있었던 것 같다는 마을 어른들의 말이 생생하게 다시 들려온다.

이병철 회장은 마을과 고향에 홀대는 했지만 이곳 정곡면 출신 아이들에게는 호의적이었다.
누구든 원하기만 하면 대구에 있는 제일모직 등에 취업을 시켜 주기도 했다.

오늘의 세계 1등 기업 삼성을 만든 장본인의 탄생지는 그의 생가 말고는 주변이 너무나 초라했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의 탄생 마을 입구에 서서 마을 안쪽을 쳐다보면 엄청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우 청룡 좌 백호의 품안에 안겨 있는 형국에다 남산의 끝자락에 자리한 생가터는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그 기운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진다.

이 때문에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가고 있는 것이다.

이 마을에서 태어난 기자도 지난달 17일 아들과 며느리 손자 손녀와 함께 이병철 회장의 생가를 들려 보았다.

가족들에게 말로 할 수 없는 그 무언가의 선물을 마음으로 전해 주며 고향을 떠나왔다.

 

   
 
  광에 쌓여 있는 쌀과 당시 생활 용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쟁이, 멍석 등 옛날 농기구와 생활 기구들이 잘 정돈되어 있다.  
 
   
 
  안채 우측 산 밑에 쌀가마를 차곡차곡 쌓아 놓은 듯한 대복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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