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매일 PDF 지면보기
과월호 호수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최근 김해종합뉴스
행복1%나눔재단 희망캠페인
함께해요 나눔운동
時도 아닌 것이
행복밥집
TV 방송 영상
커뮤니티
다시보는 부끄러운 김해 현장
가야권역 출토유물<6> 대성동고분군, 금동관ㆍ마제 석금ㆍ소형환옥 유물 출토
상태바
가야권역 출토유물<6> 대성동고분군, 금동관ㆍ마제 석금ㆍ소형환옥 유물 출토
  • 경상도 촌놈 조유식
  • 승인 2011.09.28 10: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야사 관련 서술 바꿀 수 있는 귀중한 자료

가야의 왕(급)무덤들인 대성동1·2·3호분의 남쪽 아래사면에서 대성동1호분보다 약 30년 늦은 시기인 5세기 후기에 해당하는 대형수혈식석곽묘(73호분)와 무문토기시대 개석목관묘(84호)가 대성동고분군에서 처음으로 조사되었다. 

 

   
 
  ▲ 금동관이 출토된 석관묘.  
 

수혈식석곽묘인 73호분은 비록 부곽이 딸리지 않지만, 무덤의 크기와 금동관으로 보아 금관가야의 수장묘일 가능성이 높다. 

73호분에서 출토된 토기는 이단교호투창고배 등 신라식토기들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가야적인 문양시문 방법과 소가야식토기가 부장되는 등 가야토기의 요소 역시 많이 포함하였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 토기들의 시기는 복천동53호와 마산 현동64호와 같은 단계로 5세기3/4분기로 설정된다. 

84호 석개목관묘는 청동기시대후기 전반의 늦은 시기에 해당하는데, 삼한시대 목관묘에 주로 부장되는 유리제소형환옥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이는 한반도에서 출토된 유리제소형환옥 중 가장 빠른 시기의 사례로 이 환옥의 계통과 제작시점에 대해 많은 논쟁이 예상된다.

 

   
 
  ▲ 73호 금동관편.  
 

또한 석개목관묘의 하한시점과 삼한시대 목관묘와의 관련성 여부 역시 앞으로의 연구과제라 하겠다. 

이외에도 4세기 1/4분기의 대형목곽묘가 대성동고분군에서는 확인되지 않다가 이번에 조사되는 등 금관가야 고분문화 연구의 중요한 자료들이 다수 확보되었다. 

향후 대성동1호분과 73호분 사이에 대성동1호분 다음 단계의 수장묘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확인 조사가 필요하다.

73호분 발굴의 의미는 서기 400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금관가야 정벌로 인해 금관가야 수장층 묘역인 대성동고분군이 축조 중단되고 중심세력이 없어졌다는 기존의 학설을 뒤엎는 단서가 확보된 것으로 향후 역사교과서에 실린 가야사 관련 서술도 바꿀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 금동관.  
 

이 박물관 송원영 학예사는 "왕급 무덤에서 출토되는 금동관이 5세기 후반 무덤에서 출토됨으로써 4세기에 이미 금관가야가 패망했다고 알려진 가야사를 새롭게 정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대성동 1호분 다음 단계의 수장묘가 존재했는지에 대한 확인조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발굴 현장에서 열린 6차 발굴조사 자문위원회는 김해 대성동고분박물관이 기초 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문화재청에 등록된 발굴전문기관으로 이름을 올린 뒤 첫 발굴조사에서 큰 성과를 거둬 더욱 값지다고 평가했다

 

 

 

 

   
 
  ▲ 마제 석금과 소형환옥.  
 
   
 
  ▲ 73호 전경.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