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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마주보는 두마리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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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마주보는 두마리 물고기
  • 조유식취재본부장
  • 승인 2011.07.14 1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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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시리즈 가락국의 탄생

수로왕릉 정문에 깊이 새겨진 장식판(裝飾板)

디자인은 한국의 단청의장(丹靑意匠)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특히 가운데 흰 수투우파을 두고, 파아란 물속에 마주보는 두 마리 물고기가 인상적이다. 아유타(阿踰陀)라는 나라 이름이 전통적인 한국사에서 찾을 수 없듯이, 전통적인 한국식 디자인에 벗어나는 이 장식판의 상징내용(象徵內容)은 그 아유타국의 고지(故地)에서 밝힐 수 있지 않겠는가?

   
 
  ▲ 김해의 상징물인 신어는 신설되는 김해지역 교각 등에 많이 설치되고 있다.  
 

아유타(阿踰陀)라는 지명이 한반도 내에 있지 않다고 해서 그것을 의심할 수 없는 일이며 <가락국기>의 다른 기록처럼 분명한 사실임을 믿을 수 밖에 없다.

(1) 마주보는 두 마리의 물고기는 `성스러운 물고기(神魚)`이며, 아요오디아의 주민들은 옛부터 집정문 입구에 이 디자인을 새기는데 중앙의 심벌은 그 건물 주인에 따라 다르다.

(2) 수로왕릉의 장식판 중앙의 녹색의 디자인은 맞붙은 활(弓)이며, 위대한 왕이자 태양신(太陽神)인 라마왕의 상징이며, 아요오디아의 현 행정구분인 우트라, 프라데쉬주(州)의 주장(州章)도 두 마리의 물고기와 활이라는 점에서 수로왕릉 정문의 디자인의 심벌과 동일하다.

(3) 그날, 왕후의 승선에 단 천기는 고래로부터 아유타국의 깃발이며, 오늘날에도 이 지역 주민들은 인도 국기 대신 진홍의 깃발을 게양하고 있다.

(4) 기원전 수세기에 건설된 강변도시 아유타국의 왕성은 서쪽을 향한 한마리 물고기의 모양을 하고 있었고, 그것은 또 인도의 고대에 관한 기록인 <스칸다 프라나(Ska-nda Purana)>의 증언에 부합되며,  이 성곽 건설기술로 보아 아유타국은 고도의 문명과 기술을 가진 태양왕조(太陽王朝)였었고,

(5) 이태왕조의 기원을 지그리스강(현 이라크)변의 `태양사원(太陽寺院, Sun Temple)`에 기원을 두며 파키스탄의 오우드(Oud)에서 아요오디야, 다시 메남강 하구(타이)의 아유타야에서 북진을 계속하였고, 고대 일본열도도 이들 태양왕조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인도국의 작가 나아가드가 증언하였다.

   
 
  ▲ 김수로왕능 입구에 있는 코끼리 두 상과 신어  
 

허왕후의 본국이 아유타국일 수 없다는 반증은 없는 대신, 그 아유타국의 전승과 같은 전승이 수 만리를 격한 한반도 남단, 그것도 가락국 고유의 것을 소멸케 하려는 인위적인 작용의 시간을 이겨내고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간지스강의 상류 부근에 위치한 아요오디아가 그날 왕후의 승선한 지점 이라고는 볼 수 없는 일이다.

앞에서도 살핀 바와 같이 2개월 이내의 항해 기간으로 이 강을 내려서, 일단 되돌아 갔다가 재출발하기는 범선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이유로 그날 밤 왕후가 밝힌 출자(出自)의 증언이 허위였다고 할 수는 없다.

아유타국의 역사에서도 아유타는 동북 아시아로 차례차례 분국(分國)을 마려해 나간 사실을 기록하고 있고, 김해김씨 보첩과 그 당시만 해도 남아있는 <가락국기>의 원본 등을 자료로 허목(許穆)은 왕후를 `아유타국 군지녀(阿踰陀國 君之女)`라 결론 짓고 있기 때문이다.

`아유타국의 왕자(君)가 만든 나라의 공주`라는 이 말은, 지그리스강에서 간지스, 그리고 메남강으로 아시아를 동진(東進)한 태양왕족(太陽王族_의 진출사(進出史)와 부합되는 것이다.

이런 점을 내딛고, 서기 48년 음력 5월에 왕후가 출국한 아유타국을 어디로 추정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우선,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그 배의 크기는 쌀 3백가마, 비단 4백5십필과 승무원 15명이 탈 수 있는 대형의 범선이며, 항해 기간은 2개월 이내, 그리고 본국을 출항한 범선의 처음 진로는 동진(東進)인 항진 조건을 만족시키는 곳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 조건을 만족시키는 고대의 이 지역의 항로는 중국 남부의 명주(明州) 복주(福州)이며, 여기와 일본국 규우규우(九州)와의 항로와 항해기간은 왕편이 늦가을에서 복편이 늦여름에서 초가을이라는 사실과, 평균적으로 1개월에서 2개월로 오끼나와 열도를 따라서 오는 항로였다는 것은 일본국의 견당선(遣唐船), 그 이후에도 유학승(留學僧)의 기록에서 평균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보면, 구체적으로 왕후의 출항지이자, 아유타국의 최동진(最東進) 분국을 복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까닭은 첫째로 왕후의 능인 김해 허왕후능(金海 許王后陵)에는 `가락국수로왕비. 진주태후허씨능(駕洛國首露王妃. 晉州太后許氏陵)` 이라 새긴 비가 있고, 세전(世傳)하는 보첩에도 한결같이 진주허씨후(晉州許氏后)로 일치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며 `허태후` 위에 올린 `진주`는 관례상 허왕후의 본관(本貫)을 가리키는 것인데, `진주`라는 지명(地名)은 한반도에 없다.

한반도만이 아니라 국립중앙도서관을 비롯해서 일본국 국회도서관의 장서 가운데 중국 지명(中國 地名) 사전에도 보이지 않는 지명이 `진주`인 것이다.

그 `진주(晉州)`는 중국음으로 `Fuchow`이며, 현재 복전선의 `복주(福州)`도 같은 음이다.

그리고 그 복준는 고래로 해외무역의 중요거점이자, 오늘날 전세계에 깔린 화교(華僑)의 근거지이기도 한데, 이 곳의 특산물은 고래로 차(茶)와 황벽(黃璧)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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