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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역사 기획시리즈 가락국의 탄생(1)-구지봉의 대왕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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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역사 기획시리즈 가락국의 탄생(1)-구지봉의 대왕맞이
  • 조유식 취재본부장
  • 승인 2011.04.20 1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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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어는 당신이 군왕이 되어 이곳에 나라를 이루고 자손을 뻗기 위해서 하늘에서 내린 몸임을 밝히고, 구간(九干)의 무리들에게 구지봉 꼭대기의 흙을 파면서 노래를 부르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개벽(開闢)의 후(後), 이 땅에 아직 방국(邦國)의 호(號) 없고, 또한 군(君)과 신(臣)의 칭(稱)이 없었느니라."한반도의 남쪽, 낙동강(洛東江)의 하류를 중심으로 오백이십일 년 동안, 이 지역의 문화와 무역(貿易) 담당자이던 고대 왕국, 가락국의 역사를 전하는 유일한 기록인 <가락국기>는 이와 같은 허두로 시작됩니다.

한반도 남부를 북에서 남으로 흘러내리는 길이 525.15km의 낙동강은, 그 유역(流域)에 비옥한 경작지(耕作地)를 이룩하면서, 김해 부근에서 남쪽바다로 들어갑니다. 즉, 김해는 오늘날에 와서는 김해평야로 불리우는 곳이지만, 가락국의 건국기 무렵에는 낙동강의 하구항(河口港)이라고 할 만한 곳이었습니다.

그것도 단순한 하구항이 아니라 태평양의 서쪽을 남에서 북으로 흘러드는 리만 해류가 한반도에 다다르는 거대한 바다의 길목이 김해였습니다.

<가락국기>가 적은 `이 땅(此地)`이란 이 바다의 길목이던 김해 일대이며, 그때까지는 고대왕국(古代王國)이 세워지지 않았고, 군왕(君王)과 신하의 계층도 없는 까마득한 옛날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아도간(我刀干), 여도간(汝刀干), 피도간(彼刀干), 오도간(五刀干), 유수간(留水干), 오천간(五天干), 신귀간(神鬼干) 등이 있어 이들은 추장(酋長)으로 모든 백성을 다스렸는데, 총세(總勢)는 일백 호, 칠만오천 인이었느니라. 대개는 산야(山野)에 모여 우물을 파서 마시고 밭을 경(耕)하여 식(食)하였느니라."<가락국기>는 이렇게 계속됩니다. 즉, 고대 왕국으로서의 형태는 이루지 못한 나름대로 도합 칠만오천 명 정도의 백성들이 `간(干)`이라는 칭호를 가진 9명의 리더(酋長)에 통솔되어 먹고 살았습니다.

3월은 음력이므로 한반도의 남부는 봄이 무르익은 철이며, 그날은 `계욕`의 날이었다고 합니다. 제 몸에 붙은 더러움을 떨어버리기 위해서 물에 들어 멱감고 물가에서 지내는 제사를 `계욕`이라 하는데, 음력 3월 첫 뱀날(巳日)에 행하는 것을 춘계라 합니다. 그 해 이날이 며칠인가에 대해서는 역학(曆學)으로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마는 <김해김씨선원대동세보(金海金氏璿源大同世譜)>에 의하면 3월 3일이라 하고 있습니다.

이 `계욕`의 풍습은 얼마전까지도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계속되었고, 바다 건너 일보 열도의 주민들은 계욕의 의식을 그들의 신앙인 신도(神道) 속에 받아들여 지금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계욕이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이다 아니다 하는 것은 문제 삼을 일이 못됩니다. 멀리 떨어진 남쪽 인도에서는 지금도 성스러운 강 갠지스 강에서 이 계욕에 의한 기도는 계속되고 있고, 회현동의 패총의 쌀이 물에 실려 온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가지고 온 것처럼, 이 풍습도 가지고 온 것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서기 42년 3월의 계욕날. 이 날은 대단한 안개로 안팎이 어둡고 어두웠다고 <가락국기>의 끝부분에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짙은 안개속에 계욕을 마친 사람들은 물가에서 제사를 지내고 술을 돌려가며 마시게 되었는데 이 때 무슨 소리를 듣게 됩니다.

"소거(所居)하는 북(北)쪽 구지에서 수상(殊常)한 성기(聲氣)가 호환(呼喚)하였느니라."이 날의 계욕은 구지봉(龜旨峰)의 남쪽에 사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던 것입니다. "구지는 산 이름이니라. 마치 자다가 엎드려 있는 모양이므로 이렇게 이름하였느니라"라는 주석이 붙은 것을 보면 이 고장에서 옛부터 `개라봉`이라 부른 지금의 구지봉이 틀림없습니다. 이 고장 사람들은 `자라`를 `개라`라고도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 구지봉에서 일상에서는 듣지 못한 수상한 목소리로 부르는 소리가 들린 것입니다.

"중서(衆庶) 이삼백 인이 여기에 집회(集會)하였었는데 마치 사람의 음(音) 같으나 그 형(形)을 숨기고 음(音)이 발(發)해서 이르기를 `여기 사람이 있느냐. 부(否)냐` 하기에 구간(九干) 등이 이르되. `저희 도(徒)가 있습니다` 하였더니, 다시 이르되 `내가 어디에 있느냐`하기에 대(對)해서 이르기를 `구지 옵니다`하였느니라."즉, 그 모습을 숨긴 사람 소리가 구지봉에서 들려 온 것입니다. 이 수상한 소리를 <김해김씨선원대동세보>에는 `공중어(空中語)`라고도 했습니다. 공중어란 복화술(腹話術)로 내는 말소리입니다. 입술을 움직이지 아니하고 뱃속에서 내는 소리로 훈련으로 숙달하면 귀신소리로 들리게 됩니다. 이런 복화술로 점을 치는 점장이를 `공징이`라 부르는 것은 아마도 이 `공중어`가 `공징이`로 바뀐 이름일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안개 짙은 아침 계욕후의 술을 한 순배 돌린 뒤입니다. 구지봉 쪽에서 "거기 누가 있느냐?" 라는 물음이 `공주어`라는 예사롭지 않은 소리를 내려 들려온 것입니다. 계욕하던 무리들은 끌려 드는 심리상태가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신비스런 목소리는 차례로 질문해서 지금 당신이 있는 곳이 `구지봉`임을 무리들에게 확인시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야 그 소리를 주인공은 다시 말을 합니다.

"황천(皇天)이 나에게 명(命)한 소이(所以)는 바로 이곳이니라. 가방(家邦)을 유신(維新)하고, 군후(君后)가 되기 위(爲)하여 이곳에 강(降)하느니라. 너희들은 모름지기 봉정(峯頂)을 굴(掘)하여 흙을 촬(撮)하고, 노래부를지니라."공중어는 이와 같이 당신이 황천상제(皇天上帝)의 부름을 받들어 군왕이 되어 이곳에 나라를 이루고 자손을 뻗기 위해서 하늘에서 내린 몸임을 밝히고, 황공해하는 구간(九干)의 무리들에게 구지봉 꼭대기의 흙을 파면서 노래를 부르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거북아 거북아(龜何龜何). 그수(首)를 현(現)하라. 만약에 불현(不現)하면 번작(燔灼)해서 끽(喫)하리- 이렇듯 부르면서 답무(踏舞)하여라. 이는 바로 대왕(大王)을 영(迎)하여 환희(歡喜)해서 용약(踊躍)함이니라."<가락국기>는 서기 42년 3월의 첫뱀날(上巳日), 오늘의 대한민국 경상남도 김해시의 북녘 구지봉 위에 황천(皇天)의 영(令)을 받들어 천강(天降)한 말소리만 들리는 대왕(大王)이, 구간(九干)이 이끄는 무리들에게 최초의 명령을 내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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