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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여년전 묻혀 있던 6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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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여년전 묻혀 있던 6가야
  • 조유식취재본부장
  • 승인 2007.09.01 1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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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는 살아있다
   
     

찬란했던 2000여년전 묻혀 있던 6가야.

역사와 깊숙이 맺어진 후손과의 인연을 무엇으로 풀까?

가야산을 모태로 흙은 토기로, 나무는 금(琴)으로, 쇠는 검(劍)과 철기로 태어났다.

가야는 당당한 왕국으로 일본, 인도, 중국과도 열심히 줄다리기하며 버텼다.

‘껴묻이’(순장)를 하면서 지킨 영토인 것이다.

가야제국의 중심 김해 금관가야는 해양과 유리한 지리적 자리를 잡았다.

무덤을 극락이라 채색한 생각, 갑옷 입은 여인이 묻혀 여전사도 있다.

가야산의 물줄기는 가야를 적신다. 가야천과 이천천은 비옥한 땅을 생산했다.

삼국유사, 삼국사기, 신증동국여지승람, 광개토대왕릉비, 일본서기, 남제서, 삼국지 일연,  김부식,  그리고 가야의 왕들이 가야를 이야기 한다.

야광조개문양, 태양의 문양, 바람개비문양, 청동그릇, 인도 물고기, 신어문양, 기마무사상, 청동거울, 가야를 보여준다.

가야산, 가야천, 가야금 ,가야역, 가야대학교, 가야읍에 가야는 살아있다. 가야의 후손은 일본으로, 인도로 선조를 찾아다닌다.

몇날 몇일을 잠도 이루지 못하고 실오라기같은 선조의 유물을 들고 찾았다! 가야의 혼을 알았다! 가야선조의 뜻을 지키라! 하는 역사의 사명을

연맹체는 민주주의의 토대이다. 주변세력을 통합 할 줄 알고, 철기로 무장한 철기군 힘과 교역을 하는 제국의 모습. 순장을 하는 왕의 권위 가야제국의 중심 김해. 제4제국을 지금 다시 세우고 있다.

가야는 살아 있었다. 살아 우리에게 너무 가까이 와 있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일어난 수십개의 부족국가가 차츰 확대 되면서 부족국가를 형성하여 가야로 발전하였다.

금관가야는 지금의 김해, 아라가야는 함안, 대가야는 고령, 소가야는 고성 ,고령가야는 함창, 성산가야는 성주를 말한다. 가장먼저 탄생한 금관가야가 가장 강력한 세력을 갖고 있었으므로 다른 가야들이 맹주국으로 삼았다.

532년 금관가야가 신라에 멸망당하면서 가야의 주도권은 대가야로 넘어갔다.

가야연맹은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백제와 신라의 잦은 공격을 받았는데 금관가야의 멸망을 시작으로 하나 둘 신라에 병합되면서 562년 완전히 신라에 흡수되었다.

 6가야는 500여 년 동안 존속하였지만 삼국처럼 중앙집권국가로서 발달하지 못하고 연맹체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전성기의 가야연맹 세력은 매우 강하여 신라를 위협할 정도였으며 일본에도 진출하여 문화를 전하였다. 일찍부터 철기문화가 발달하여 낙랑, 대방 등 한나라의 군현과 일본에 철을 수출했다.

농업기술이 발달한 6가야는 신라를 부흥시키는 원동력이었다. 한나라의 영향을 받은 가야는 백제와 신라 사이에서 독특한 문화를 꽃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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