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매일 PDF 지면보기
과월호 호수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최근 김해종합뉴스
행복1%나눔재단 희망캠페인
함께해요 나눔운동
時도 아닌 것이
행복밥집
TV 방송 영상
커뮤니티
다시보는 부끄러운 김해 현장
자식도 재산도 필요 없고 마누라가 그립다
상태바
자식도 재산도 필요 없고 마누라가 그립다
  • 경상도 촌놈 조유식
  • 승인 2023.05.24 08: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유식의 허튼소리> 행복충전소 천원의 행복밥집 급식소의 단골손님인 80대 후반 부부가 계셨다.

어르신 부부는 행복밥집에 오시는 분 중에 가장 연로하신 부부지만 행복밥집에 들어오실 때부터 "수고하십니다"라는 인사를 빠뜨리지 않는다.

그리고 주방 앞까지 가서도 "수고 많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

노부부는 "이 집 음식이 간간하게 맛있다. 우리 엄마가 해 주시던 그 손맛이 느껴 질 정도로 짜지도 맵지도 않고 부드럽고 맛있어 매일 온다"고 하셨다.

그렇게 수년을 오시다가 어느 날부터 노부부가 오시지 않아 혹시 코로나로 인해 건강에 이상이 생겨 식사하시러 오시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약 1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어느 날 할아버지께서 혼자 행복밥집에 오셨고 지금도 매일 오시지만 늘 혼자시다.

1년 전보다 많이 불편해진 걸음걸이와 옷매무새가 이전 같지 않았지만 표정은 맑고 정결한 말씀은 변함이 없었다. 거동이 불편하시기에 자리에 앉아 계시도록 안내한 뒤 1식 5찬이 담긴 식판을 가져다드리며 맛있게 잘 드시라고 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가슴을 너무나 아프게 했다.

"내가 오는 게 더 불편하제"

"아닙니다. 어르신과 같은 분들을 위해서 운영하고 있는 밥집입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매일 매일 오셔서 따뜻한 식사 꼭꼭 챙겨 드시고 건강 잘 챙기셔야 합니다"

"고맙소"

식사를 마치고 나오시기에 전날 장애인기업다우리 권우현 대표가 기증한 거동 불편 어르신 용 사각발판 안전 보행 지팡이 하나를 드리며 사용하시겠느냐고 물었더니 짚어 보시고는 하나 달라고 하여 드렸다.

어르신께서 자판기 커피를 뽑아 필자에게 먼저 한잔을 권했다. 그리고 당신도 커피를 한잔 뽑아들고 의자에 앉으시기에 자리 옆으로 가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전체 모습에서 지난날과 다른 허전함을 느껴 말동무라도 되어 드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옆자리에 앉아 어르신께 대화를 유도한 것이다.

커피를 마시다가 긴 한숨을 내 쉰 뒤 "사실은 우리 마누라가 작년에 먼저 갔다. 내 보다 먼저 갈 줄 몰랐는데 먼저 갔다. 그렇게 일찍 갈 줄 알았으면 잘해 주어야 했는데 맨날 화만 내고 내 마음대로 살다 보니 마누라가 고생고생 많았는데... 마누라가 있을 때는 말동무도 되고 맛있는 것도 해주고 해서 심심하지 않았는데 이제 말동무도 없고 먹고 싶은 음식을 해 주는 마누라도 없다 보니 만사가 귀찮고 내 몸 돌보기도 싫다. 마누라가 늘 늙어 갈수록 깨끗해야 한다며 옷도 매일 갈아입게 했는데 이제 챙겨 주는 사람도 없어 내가 자꾸 추줍어진다. 그동안 벌어 놓은 상가는 딸이 집과 땅들은 아들에게 물려주어 관리하고 있는 데 다 필요 없더라. 자식도 돈도 재산도 다 소용 없고 마누라가 자꾸 보고 싶다"며 아내를 그리워하며 외로움을 참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젊을 때는 마누라 마음고생 마이 시켰지. 생각만 해도 미안하제. 늙어서는 다 늙은 노인네 뒤 바라지하느라 고생만 했는데 먼저 가고 없으니까 보고 싶고 미안하고 그립다"며 또 한숨이다.

올해 꼭 90이라는 어르신께서 참으로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가슴에 담아 두셨던 가슴 속의 비밀을 말동무에게 다 틀어 놓으시고는 표정이 많이 밝아지셨다.

늙어 갈수록 말동무? 누군가와 대화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도 만복 중에 가장 큰 복이 아닌가 싶었다.

자식은 일촌(一寸) 이고 부부는 무촌(無寸)이라고 했는데 못난 우리 인생은 무촌은 철저하게 멀리하고 무시하며 섭섭하게 하면서 한참 먼 일촌을 챙기는 일에 인생을 다 바치고 있지만 결국에는 무시만 당하고 이용만 당하고 배신까지 당하기도 한다.

천원의 행복밥집에 오시는 어르신 중에 자식 사업밑천 돼 주다가 망해 버린 어르신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중에 필자와 호형호재로 지내시던 종친의 형님께서는 수십 억대 재산을 몽땅 아들 사업에 투자했다가 아들의 사업 실패로 은행의 대출 보증 압박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넘치는 재산가에다 너무 건강하셔서 천하에 부러울 것 없어 보이던 분이었지만 1촌 때문에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된 것이다.

"조 사장, 니는 참 좋은 일 한다. 나도 너무 가난하게 살아본 경험이 있어 이런 사업 꼭 한번 해 보고 싶었는데 실천해 보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다. 내 답답한 이야기를 조 사장 니하고 나누고 싶다. 며칠 있다가 다시 올게, 오늘은 만원밖에 기부 못 하지만 나중에 마이 하께..." 

그렇게 말씀하시고 돌아가신 그 형님은 며칠 뒤 사업 실패한 아들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사흘 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오직 돈 버는 일 재산 모으는 일 자식 키우는 일에 평생을 바친 분이었지만 마지막은 너무 허무하고 허망하게 삶을 마감하신 것이다. 

"자식도 내 품에 있을 때 자식이지 떠나면 남보다 못하다" 지혜로운 어르신들의 말씀이 새삼 머리에 맴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