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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야왕도 품은 임호산ㆍ함박산ㆍ경운산ㆍ분성산ㆍ신어산ㆍ돛대산 등 명산의 정기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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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야왕도 품은 임호산ㆍ함박산ㆍ경운산ㆍ분성산ㆍ신어산ㆍ돛대산 등 명산의 정기 찾아야
  • 조현수취재본부장
  • 승인 2021.11.03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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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매일ㆍYN뉴스 창간 14주년 기획특집으로 `가야왕도 금관가야 도심 원형복원`이란 주제로 총 10회에 걸쳐 특집보도를 한다. 영남매일ㆍYN뉴스를 14년 동안 함께 해 준 김해, 응원하며 지켜주고 사랑해 주신 시민의 행복 등 인구100만 대도시를 바라본 김해 미래의 중심 도시 기반 조성을 비롯한 가야왕도 가락국 수도로서 균형 잡힌 도시 지형의 필요성에 대해 시민들의 의견을 기초하여 대안 제시와 시민운동을 통한 김해 숙원 해결에 기여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영남매일ㆍYN뉴스 창간 14주년 기획특집=가야왕도 금관가야 도심 원형복원]

<3> 가야왕도 품은 임호산ㆍ함박산ㆍ경운산ㆍ분성산ㆍ신어산ㆍ돛대산 등 명산의 정기 찾아야

동쪽 끝자락 가야시대 부처바위 마애불(불암동) 서쪽 끝자락 흥부암 부처님(전하동)의 염원?
남해고속도로 공사 때 화약폭파로 산산조각 난 불암동 마애석불, 주민들 다시 모시자 발원

불과 50년 전만 해도 김해의 중심이라고 불렸던 가락국 수로왕 탄생지 구지봉(구산동)을 중심으로 가락국 수로왕릉(서상동), 수로왕비릉(구산동), 가야왕궁터(봉황동), 가야왕궁터(수로왕비 처소 추정 등 연자루 동상동)가 존재하고 있는 이곳이 명지 명소가 되었다.

김해 군청 김해 읍사무소 등기소 경찰서 교육청 등등의 관공서가 다 모여 있어 군민들뿐만 아니라 부산 등 외지인들도 이곳을 찾아와 일상을 즐기고 누리기도 했다.

전국에서 다방이 가장 많고 술집과 여관 여인숙도 많은 작은 읍내가 바로 가야왕국 수도였던 김해읍이었다. 육군 공병부대가 있어 훈련 병사와 면회 온 가족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김해읍이 경제 중심지가 된 것이다.

동김해지역의 대표적인 경제활동은 전국 최초로 시작한 비닐하우스 농법으로 전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킬 정도로 명성을 날렸다.

박정희 대통령이 극찬할 정도의 비닐하우스 농법은 김해의 꿈이 되었고 이 농법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또한 서김해지역 내동 외동 주촌 등은 양계장과 우사 돈사 밀집지역이 되어 닭, 소, 돼지 등 축산단지를 방불케 했다.

병아리감별연구소(내동)가 들어서고 병아리 부화장(서상동)까지 있을 정도로 닭, 돼지, 소 생산 대표적인 지역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전국 최초 최대 축산물 도매시장이 김해에 있을 정도로 축산물 도시가 되어 있다.

가락국 수도 가야왕도가 500년 동안 해상교류를 통해 부강해졌을 정도로 명산의 정기와 김해평야의 정기 그리고 왕도의 터 정기와 기운이 넘쳤을 것이라는 것이 고승대덕의 말씀이다.

대덕스님들의 말씀에 의하면 가야시대 조상들이 신어산을 중심으로 왼편(동쪽)으로 뻗어있는 돗대산의 끝자락(불암동)은 모두 바위산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곳에 마애석불을 조성하여 왕도를 지켜 주고 수호하도록 하고 신어산을 중심으로 오른쪽(서쪽)으로 뻗어있는 경운산을 지나 함박산 경운산 끝자락(전하동) 바위산에 사찰을 짓고 부처님을 모셨다.

또한 신어산 경운산의 중심부 분성산 끝자락인 바위산 남산(시청 자리)에 사찰과 토신 목신 산신께 재를 올리는 사당이 있었을 정도로 천지 기운에 의지를 많이 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했다.(40여 년 전까지 있었음)

분명한 것은 그 당시 선조들이 이 명산 바위틈에 사찰을 짓거나 마애불을 조각하여 가야 수도(김해읍)를 외호 하게 한 것은 분명하며 깊은 진리와 뜻이 담겨 있다고도 했다.

이처럼 김해의 발전과 번영 안녕을 위해 천년 이상 자리하고 있던 불암동(佛岩洞) 부처바위 마애석불은 남해고속도로 공사를 하면서 바위를 폭파하여 산산조각 내어 파괴했다.

불암동(佛岩洞)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된 이곳 대형 암석의 마애불상이 파괴되는 모습을 본 마을 주민이자 작업 인부가 이 같은 사실을 불교계에 알렸다.

연락을 받은 당시 김해불교신도회 배석현 회장은 김해불교청년회원들과 폭파 현장 즉 마애불상이 박살난 곳으로 달려가 작업을 중단시키고 폭파로 쌓여 있는 바위 잔재 하나 하나를 들어내며 사라진 마애불상 조각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 많은 바위와 폭파된 잔돌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확인하는 방법으로 불상의 조각들을 찾기 시작했다.

30여 명의 불자들과 공무원들이 16일 동안 깨진 작은 바위와 돌을 옮기고 옮기면서 찾아낸 마애불 조각들은 100%가 아닌 80% 정도뿐 그 이상은 찾을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모아진 마애불 조각을 다시 하나하나 붙여 동상동 연화사 포교당 대웅전 뒤편에 모셨다.

지금도 연화사에서 천년의 미소를 머금고 불암동 돛대산 그 자리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는 듯하여 친견을 할 때마다 부끄럽고 죄송할 때가 많다.

현재는 김해 관문이 된 불암동 돛대산 자락에 마애불 부처님을 다시 모셔 임호산 부처님과 돛대산 부처님께서 가락국 수도 가야 왕도의 옛 정기와 기운을 북돋아 주고 김해의 번영과 시민 행복이라는 자비 광명이 충만하도록 해주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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