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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고도궁허비의 뒷면에는 위쪽에 크게 분성대(盆城臺)라 쓰여 있고, 아랫쪽으로 ‘가락기원(서기42년) 1887년에 숭록대부 윤용구가 쓰고, 후손 김문배가 세웠다고 적혀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곳은 중궁터이다. (비석의 '허(墟)’는‘터’라는 의미임, 봉황동 '금관가야 왕궁터 발굴현장'에도 '가락국시조 왕궁 허'라고 적힌 비석이 서 있음)
이 비가 서 있는 위치에 과거 가락국 초기에는 허왕후의 중궁터가, 조선시대에 와서는 김해객사터 내에 함허정 옆에 분성대가 있던 곳이다.
'가락국 7년에 아유타국의 공주가 왕후가 되시고 현 연화사 자리에 중궁전을 건립하고, 동편에는 호계사를 건립하여 허왕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석주도해, 일명 진풍도 파사석탑(바람과 파도를 진정시키는 파사석탑)'을 안치했다는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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