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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산 통천사` 김수로왕 통천을 기리기 위해 세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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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산 통천사` 김수로왕 통천을 기리기 위해 세웠졌다
  • 특별 취재팀
  • 승인 2016.09.20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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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천사지 석탑재는 소중한 문화유산 고려 11세기 초반 조성
▲ 기도원교회 마당에 의자로 변한 석재들...

김해시 생림면 생철리 무척산 통천사!

통천사에 관하여 정학한 기록은 없고 유적과 구전으로만 전해져 오면서 입증되고 있을 뿐이다.
통천사는 천지를 지키면서 수로왕의 통천과 넋을 기리며 하늘을 넘나드는 길목 역할을 한다는 차원에서 통천사를 창건했다고 전해올 뿐이다.

하지만 천지 호수주변 즉 기도원이 정원의 `쉬는 장소`로 사용 하고 있는 이 석탑재가 이곳에 통천사가 존재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물이 되고 있다. 통천사는 과거의 번성했던 시절은 사라지고 석탑의 잔재마저 지금은 교회 신자와 등산객들의 쉼터로 전락한 지 오래다.

어느 사학자가 인터넷에 올린 통천사지의 석탑에 관한 내용을 옮겨 보았다. 통천사지의 조성시기는 언제쯤일까? 옥개석에서 미약하지만 단서를 찾았다.

옥개석 층급받침이 3단이고 낙수면에 현수곡선이 보인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옥개석은 모두 고려시대 석탑이며 그것도 고려초기 즉 11세기 전반~11세기 중반경 석탑에서 많이 보이는 특징이다.

또한 기단 갑석에서도 몇가지 단서가 보였다. 여기의 기단갑석을 자세히 보길 바란다. 이 부재는 단층기단일때는 기단갑석, 이중기단일때는 상층기단 갑석일 가능성이 많다.

기단갑석의 두께가 제법 두터운 편이다. 2매로 조성된 갑석으로 추정되며 지금은 1매만 남아있다. 불규칙한 치석이 상면에 넓게 분포되어 있다.

이러한 불규칙한 치석은 기단중석(면석) 혹은 상층기단 중석(면석)이 위치한 곳이므로 세밀히 가공하지 않고 불규칙하게 치석한 흔적이다. 그러니 이 부재는 현재 뒤집혀져 있는 것이며 부연이 조출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더 접근해 들어가면 넓게 분포된 불규칙한 치석은 기단중석(면석) 혹은 상층기단 중석(면석)이 곧 하나의 돌로 조식된 흔적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이렇게 김해지역에서 기단중석(면석) 혹은 상층기단 중석(면석)이 통돌로 조식된 석탑은 11세기 중반경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김해 안곡리 삼층석탑이다.

이 석탑에서는 현재 후보물이지만 하층기단 전체가 통돌로 되어 있어 상층기단 전체도 통돌로 되어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해서 이 석탑은 김해 안곡리 삼층석탑과 친연관계가 있다.

탑신괴임을 확인하기 위해 아래를 확인해 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갑석아래에 2단 각형의 높은 탑신괴임이 조식되어 있었다. 이렇게 높은 2단 각형의 탑신괴임이 조출된 석탑은 11세기 석탑중에서도 이른 시기에 조성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위의 내용을 정리하면 통천사지 석탑재는 아래와 같은 특징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1. 탑신괴임이 2단 각형으로 높게 조성된 점
2. 옥개석 하면에 3단의 층급받침이 있는 점
3. 옥개석 상단 낙수면의 현수곡선이 있는 점
4. 부연이 조출되지 않은 점
5. 기단중석(면석), 혹은 상층기단 중석(면석)이 통돌인 점

위와 같은 특징으로 보아 김해 무척산 통천사지 석탑재는 11세기 초반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겠다.(중략/ 일부 사진 인용함)

`신비의 나라` 가야에 신비로운 불교의 꽃이 2000년 전에 피었다. 허왕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뱃길로 가야로 와 김수로왕과 인연을 맺으면서 우리나라에 불법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허왕후가 바다를 무사히 건너온 것에 감사하여 세운 김해 분산의 해은암(海恩庵),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세운 무척산의 모은암(母恩庵), 가락국 2대 거등왕이 부친 수로왕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 세운 부은암(父恩菴)까지 가야의 사찰은 왕족의 인연과 항상 함께 하였다.

가야불교의 3대 사찰 중의 한곳으로 알려져 있는 부은암은 밀양시 삼랑진 천태산 중턱에 낙동강을 내려다보는 곳에 있다.

부은암이 있는 천태산은 가락국 왕족의 탯줄을 묻었다는 곳으로 지금도 부은암 인근에는 1~3세기 무불상시대의 불교를 상징했던 2기의 장방형 돌무더기 스투파가 지나가는 길손에게 신비로움을 준다.

거등왕이 아버지 수로왕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세운 왕족의 절 부은암은 모은암과 더불어 가야가 부모님의 큰 은혜를 특별히 여겼음을 알 수 있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된 부은암은 조선 말경 1860년(철종11년)에 동화사 학송스님이 옛 부은사지에 부은암을 복원하였다고 전한다. 부은암 뒤 폭포의 바위에 통천도장(通天道場)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통천`이라는 글은 가야불교의 절터에서만 나오는데 신어산 은하사에 올라 가다보면 종각 옆 바위에 새겨진 신어통천과 무척산 정상에 통천사와 같은 맥락의 의미로 가야불교를 조명할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기도 하다.
(일부 사진ㆍ글 인터넷 공개 블로그 발취)

▲ 이 자연석 의자 가운데 탱주가 있어 석탑의 기단 면석임을 알 수 있다.
▲ 이 부재는 또한 많이 훼손되어 있지만 층급받침이 3단이고 현재 뒤집혀져 있는 옥개석임을 짐작할 수 있다.
▲ 옥개석 층급받침이 3단이고 낙수면에 현수곡선이 보인다. 이 특징을 가진 옥개석은 고려시대 석탑으로 11세기 전반~11세기 중반경 석탑에서 많이 보이는 특징이다.
▲ 이 부재는 단층기단일때는 기단갑석, 이중기단일때는 상층기단 갑석일 가능성이 많다.
▲ 뜻밖에도 갑석아래에 2단 각형의 높은 탑신괴임이 조식되어 있다. 이렇게 높은 2단 각형의 탑신괴임이 조출된 석탑은 11세기 석탑 중에서도 이른 시기에 조성되었음을 뜻한다.
▲ 천지못은 아무런 말이 없고 노랑꽃창포만이 통천정을 바라보며 아련한 과거의 편린을 흔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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