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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남산 합동위령대재` 특별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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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남산 합동위령대재` 특별한 의미가 있다
  • 특별 취재팀
  • 승인 2016.03.29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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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동란 당시 학살당한 김해 양민 1,226명의 넋과 사라진 남산 공동묘지 500여
영령추모 및 천도재와 잘려나간 김해 남산을 위령하여 김해의 악재를 막자는 목적
제1회 시민 1천 5백여 명, 제2회 시민 2천여 명, 제3회 3천여 시민 참석하여 추모

영남매일에서 매년 4월 첫째 일요일마다 봉행하고 있는 김해남산합동위령대재가 4월 3일(일) 김해시청 앞 주차장 광장에서 봉행됐다.

2013년 1회를 시작으로 금년 4회째를 맞고 있는 김해남산합동위령대재는 6.25동란 당시 보도연맹사건에 연루되어 학살당한 김해 양민 1,226명의 넋을 추모하고 남산 공동묘지에 안장되어있던 500여 영령들에 대한 천도재이다.

또 잘리고(활천고개) 파해쳐지면서 사라져 버린 김해의 수호 산인 남산을 위령하여 끊어져 버린 김해의 정기를 복원하고 30여 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김해의 악재를 막아보자는 취지로 영남매일과 애향 시민과 기업들의 후원으로 매년 성대하게 봉행되고 있다.

제1회 위령대재는 2013년 4월 7일 봉행했으며 참석 시민은 약 1천 5백여 명이었고, 제2회(2014년 4월 6일) 2천여 명, 제3회(2015년 4월 5일)때는 1회 때 참석 시민보다 두 배가 많은 3천여 시민이 참석하여 참배하는 등 대단한 관심을 보였다.

해가 갈수록 김해남산합동위령대재가 시민들로부터 대단한 호응을 받는 것은 억울한 죽임을 당하고도 후손과 지역민들로부터 외면당한 1800여 선조인 한 맺흰 넋들에 대한 추모행사라는 점과 김해의 정기를 돼 찾아 악재를 막아보자는 순수한 시민들의 정성으로 봉행되는 위령재이기 때문이다.

봉행위원회 관계자는 "합동 위령대재는 시민 누구나 추모와 참배를 할 수 있고, 무엇보다 불교의식과 민속 전통의식이 어우러진 한 편의 드라마 같은 문화와 전통 민속 예술을 공유한 대규모 천도재와 추모행사가 하루 종일 이어지는 등 전국 어디에도 없는 유일한 행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산자와 망자가 함께 참여하고, 추모하고, 볼거리, 먹거리 , 즐길 거리가 풍성한 위령대재와 우리 고유의 전통 민속 예술축제가 되도록 기획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에 봉행되는 위령대재에는 전설적인 무속인으로 알려진 작두춤의 대인 민혜경 무속인이 특별 초청되어 하루 3회 굿판을 펼치게 된다. 이 외에도 유명 무속인 30여 명과 제자 40여 명, 지역 문화 예술인 40여 명이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7시까지 천도재와 추모 그리고 다양한 문화예술 축제를 펼치게 된다.

봉행위원회 측은 위령대재 취지문에서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억울하게 학살된 김해 양민 1,226명에 대한 명예회복은 고사하고 시신을 수습한 가족과 위령재를 봉행한 그 후손들까지 빨갱이로 몰아 옥살이를 시키는 바람에 후손들과 주민들이 학살된 조상과 양민들에 대한 변변한 추모제 한번 봉행해 드리지 못하고 67년 동안 조상의 고혼들을 외면해 왔다"고 밝히고 있다.

또 "김해의 수호 산인 남산조차 1980년 잘리고(활천고개) 파 헤쳐지면서 용머리의 지형과 푸른 남산의 본래 모습은 사라졌다" 그리고 "용의 목으로 불리던 잘려나간 활천고개는 도로와 상업지역으로 개발되었으며 용의 귀에 해당하는 동쪽과 서쪽은 빌라와 주택단지로 개발되었고, 김해사람들로부터 가장 중요한 용의 입으로 신성시됐던 남산 남쪽 끝자락은 약 1년 가까이 폭약으로 발파하여 암석을 부수는 공사를 하여 깎아내고 그 자리에 김해시 청사와 김해시의회 청사, 김해상공회의소 청사가 들어섰다"며 남산이 이 지경이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1980년대 김해시 청사건립을 위해 남산을 깎아 내면서 그곳에 안장되어 있던 학살된 김해 양민 유해 일부와 일제 치하에 항거하다 처형된 유해를 관청에서 수습하여 매장해 두었던 500여 기의 무연고 묘지를 당시 공사를 하던 건설업자가 중장비를 동원하여 파헤쳐 인근 택지개발지구에 매립해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당시 남산공동묘지 아래는 거대한 바윗덩어리(직경 약 100km 이상 추정)인 암석이 드러나기도 했다. 김해시 청사를 짓기로 하고 공동묘지 등 남산의 흙을 걷어내던 공사업자는 거대한 바윗덩어리 하나로 형성되어있는 남산을 1년 넘게 화약으로 폭파하며 바윗덩어리를 부수는 공사를 했다.

하지만 진척은 없고 공사비가 많이 들어가자 당초 국도 높이와 비슷하게 부지를 조성하여 시 청사를 건립하기로 했던 당초 계획을 바꿔 시장과 정치인들을 매수하여 설계변경을 통해 국도보다 상당히 높은 지금의 자리에 시 청사를 건립한 것이다.

이후부터 2013년까지 김해의 악재는 계속되어 인물배출을 비롯한 한국의 대표적인 섬유회사였던 한일합섬까지 몰락하여 김해발전에 엄청난 충격을 주기도 했다.

특히 김해 남산을 훼손한 1980년 이후부터 김해 출신 국회의원, 김해시장, 김해시의회 의장 및 부의장, 시의원, 도의회 부의장, 도의원, 상공회의소 회장, 국회의원 출마자 등이 구속되거나 의원직을 상실한 지도자만 20여 명 이상 되며 인물배출도 막혀 버렸다.

이처럼 악재가 끊임없이 일어나 김해가 조용할 날이 없었고 김해 출신 정치인과 공직자들의 중앙부처 입각 또한 전혀 없으며 김해 인물 배출 또한 타 도시에 비해 빈약했다.

김해의 악재들을 지켜봐 왔던 영남매일 조유식 회장과 애향 시민들이 마음을 모아 김해 남산 합동위령대재를 봉행하여 양민들과 선대들에 대한 고혼을 추모하고 천도하며 남산을 위령하는 합동위령대재를 올린 이후 최근까지 김해의 선출직 공직자(정치인)와 기관단체장의 구속사건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으며 김해는 사회 전반에서 안정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 봉행위원회 관계자의 말이다.

하지만 아직도 김해는 혼동과 혼란, 사회적 갈등과 시민 상호불신의 병폐가 나타나고 있다.

조유식 봉행위원장은 " 억울한 죽임을 당하고도 물 한잔 얻어먹지 못한 한 맺흰 영혼들이 60여년 넘게 구천을 떠돌며 누군가를 원망했을 텐데 합동 위령재 몇 번 했다고 해서 용서가 되고 김해의 악재가 사라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우리 시민들이 정성으로 재단을 차리고 추모를 통해 우리의 조상이자 선대들의 명복을 기린다면 김해 하늘의 먹구름도 걷혀 질 것이며 찬란했던 2천 년 가야 역사 도시 김해의 영광이 도래할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에 가급적 많은 시민들이 동참하여 추모해 주었으면 한다"는 시민 참여를 당부하기도 했다.

조 위원장은 또 김해기독교연합회 회장이라는 목사가 제례위원장에게 전화하여 `위령재를 왜 하느냐고 따지며 우리가 대규모집회를 가져 위령재를 못하도록 하겠다. 위령재에 참여한 의원들에 대해 낙선 운동을 펴겠다`고 협박하고 있지만 오늘날 우리가 김해 시민으로 건강하게 살고 있는 것은 선대들의 소중한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후손된 도리로 억울하게 학살당한 선대들의 넋을 달래고 김해의 수호산 남산의 만신을 위령하여 끊어진 김해의 정기를 되찾고 악재도 막아 김해의 무궁한 발전과 김해인재육성을 비롯한 시민 모두가 행복하고 건강한 김해를 만들어 보자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위령재를 봉행해 오고 있다.

일제 강점기와 6.25동란때 소중한 목숨을 잃은 우리의 선대들에 대해 국가와  종교단체에서 추모재와 천도재, 위령재를 봉행하고 있는데 목사라는 성직자가 이 행사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며 일부지만 기독교 교리에 맞지 않는다고 남의 조상 제사와 추모행사까지 못하게 하겠다는 협박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김해와 이 나라의 불행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제4회 김해남산합동위령대재는 4월 3일(일요일) 김해시청 앞 주차장 광장에서 봉행되며 참석 시민 전원에게는 점심과 푸짐한 먹거리가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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