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금관가야 왕궁 실체 조사… 발굴비 전액 국비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14일 오전 11시 `김해 봉황동 유적 발굴조사` 개토제(開土祭)를 시작으로 금관가야 왕궁의 실체 규명을 위한 발굴조사에 착수했다.
금관가야는 가락국이라고도 하며 서기 전후부터 532년까지 김해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떨친 6가야 중 한 나라다.
▲ 발굴조사 개토제를 올리는 하루 전날 가야왕궁 발굴 예정지에 평화의 산비둘기 무리가 몰려와 축하비행을 하고 있어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사진: 조현수 기자 | ||
김해 봉황동 유적(사적 제2호)은 그동안의 발굴조사(1907년~현재)에서 회현리 패총과 더불어 토성(土城), 주거지, 환호(環濠, 마을 경계의 도랑) 등 도성과 관련된 다양한 생활유적이 확인됨에 따라 금관가야의 도성과 왕궁이 있었던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이곳이 금관가야의 도성이었다는 내용이 없지만, 1899년 발행된 `김해읍지` 고적(古蹟)조에는 `수로왕궁지는 지금의 (김해)부 내에 있다고 전해지며, 고궁지는 서문 밖 호현리에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이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와 더불어 문헌사ㆍ고고학ㆍ지질학 등 다양한 학제 간 연구를 2018년까지 병행 추진할 계획이다.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김해 봉황동 유적의 복원ㆍ정비와 학술적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확보하고 오백 년 역사에 빛나는 금관가야의 역사성과 가치를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 가락국 시조 왕궁지 비석이 수로왕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다. | ||
▲ 개토제를 시작으로 복격적인 발굴조사가 시작되었다. | ||
▲ 관계자들이 시삽을 하고 있다. | ||
▲ 발굴현장 전경. | ||
▲ 발굴현장 위치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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