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 지하철에서

2008-11-24     장봉수
ㅡ지하철에서

학교 경비 일을 하다 보니 아침에 퇴근하는 남자가 된 내가 지하철에서 종종 목격하게 되는 해프닝 중 하나가 도통 잊혀 지지 않는다.

그날따라 부산 연산동 지하철 승강장은 출근시간이라 내리고 타는 사람들로 몹시 붐볐는데. 열차 출입구 쪽에서 어눌한 남성의 고함에 섞여 “툭”하는 둔탁한 소리와 연이은 여인의 찢는 듯한 비명이 나와 주변승객들을 쭈뼛하게 했고 “내리면 탈것이지 몸도 성치않는사람을 밀긴 와 떠 미노?” 그의 부인인 듯한 사람의 목소리가 꽤나 앙칼지다.

발단은 비좁은 차안에서 중년부인이 한쪽 수족이 불편한 남편 분을 부축하여 객차 밖으로 나가는 와중에 왠 성급한 여인이 서둘러 타려다 그만 그 남자를 떠밀어 일어난 것이다.

소란도 잠시.
망신 당한 여인을 남긴 채 그들 부부가 내리고 차는 출발했으니 그것으로 돌발사건은 일단락되었으나, 나의 뇌리에서는 지금도 그 여인의 비명이 맴돌고 있으니 내겐 아직 상황종료가 되지 않은 샘이다.

뭐가 그리도 급했던지 서둘다 망신만 톡톡히 당한 여인이나 밀려 넘어 질 뻔 했다고 막말에 손찌검까지 불사한 남정네나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남편 편들기에 열 올리던 그 여편네나
그들의 행태에서 씁쓰레한 기분이 영 가셔지지 않는 까닭은 그 들 모두 내 이웃이며 함께 박수치던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국민 중 일부가 매사에 쫒기듯 서두르는 성급함이나 사소한 일에 울컥하는 조급함이나 사리분별보다 무조건 자기편부터 감싸고 보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오랜 역사의 세월 속에 숱하게 겪었던 외침(外侵)으로 인한 전란과 반세기 전 한국전쟁 와중에 그 처절했던 피난살이에서 얻어진 습성이 그 후손들에게까지 원형질처럼 의식 속에 잠재되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닐까?
사대부 팔자걸음 선비문화와 기층민들의 순박한 농경문화가 졸지에 난장 속 상인문화로 바뀌면서 말이다.

그러한 국민성이 순기능과 함께 역으로도 작용, 한강의 기적도 이루어냈고 IMF를 겪기도 하면서 오늘의 역동적인 대한민국을 있게 했지 않았나 생각되지만 이제는 좀 여유로워졌음 어떨까싶다.
매사에 신중하고 배려 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말이다.

우리 선조들의 심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유머하나가 지금 생각난다.
일사후퇴 때일까? 커다란 피난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힘들게 걸어가던 노파를 목격한 미군병사가 하도 딱해 보였던지 그녀를 자기 차에 태워주었는데, 한참을 운전 중 이상한 소리에 뒤돌아보니 여직까지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인 채 끙끙대고 있지 않는가. 황당한 사실을 목격한 미 병사 어서 그 짐 내려놓으시라하니, 황송한 표정의 할머니 왈 “내 한 몸 얻어 탄 것도 미안혀 죽겄는디 어째 짐까지.”

너무나 순진무구하지 않는가?
그런 할머니가 새삼 그리워진다.